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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0년 만에 회장 승진 "세상에 없는 기술 투자"

공식적인 ‘이재용 시대’가 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10년 만에 회장직에 올랐다. '삼성 회장' 타이틀을 단 이재용 회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과 위기 속에 스스로 구심점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정면 돌파를 예고했다. 세상에 없는 기술 투자, 위기 정면 돌파 선언 삼성전자는 27일 이사회를 열어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이사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평소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중시해 온 만큼 이사회 동의 절차를 거쳤다. 승진 안건은 사외이사인 김한조 이사회 의장이 발의했고, 이사회 논의를 거쳐 의결했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글로벌 대외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이 회장의 선임을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회장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왔다. 이 회장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재판에서 “앞으로 삼성그룹에 회장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고 회장으로 승진할 만큼 상황이 절박하고 절실한 의지를 담은 행보로 보인다. 이 신임 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된 데 이어 4년여 만에 공식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이 2020년 10월 별세한 지 2년 만이자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31년 만이다. 앞서 1987년 12월 45세에 회장직에 오른 이건희 회장보다는 9년 정도 늦은 나이다. 이병철 창업자는 28세에 대구 서문시장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며 삼성그룹의 발판을 다진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발표한 지난 3분기 실적에서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10조8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39%나 줄었다. 이로 인해 재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고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려면 회장 취임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그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출석에 앞서 취재진에게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더 사랑받는 기업 만들어보겠다”며 많은 응원을 당부했다. 또 고 이건희 회장 2주기 때 그룹의 사장단에 전했던 각오를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다.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 행사 없이 예정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했다. 각오와 소회로 취임사를 대신한 이 회장은 조만간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다 바꿔라"로 압축되는 부친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의 뒤를 이을 이 회장이 꿈꾸는 '뉴삼성'에 시선이 쏠리게 됐다. 회장 타이틀을 달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만큼 바이오, 인공지능(AI), 차세대통신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의 컨트롤타워 복귀도 관심사다. 삼성은 2017년 2월 말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지원(삼성전자)·금융경쟁력제고(삼성생명)·EPC(설계·조달·시공)·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사업 부문별로 쪼개진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등기이사 복귀 않아 책임경영 외면 이 회장은 이사회 절차를 거친 ‘셀프 승진’을 했지만 법적 책임이 있는 등기이사가 된 건 아니다.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 임원에 다시 복귀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부친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바 있다. 이어 2016년 10월에는 삼성전자 등기이사가 됐다. 이건희 회장이 2008년 4월 비자금 특검 수사로 쇄신안을 내놓고 전격 퇴진한 이후 8년 6개월 만에 삼성 오너 일가 중 처음이자 입사 이후 25년 만에 등기이사직을 맡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며 같은 해 11월 참고인 신분으로 첫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어 2017년 2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되며 삼성그룹 총수로는 처음으로 영어의 몸이 됐다. 이후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풀려난 뒤 부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정신을 계승한 '뉴삼성' 비전을 밝히고 '이재용 체제'를 시작하려 했으나 작년 1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 두 번이나 옥고를 치른 이 신임 회장은 2019년 10월 임기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상태다. 이에 따라 책임경영 차원에서 내년에 다시 등기임원이 될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책임경영을 외면한 이 회장의 승진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지배권 승계 의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임에도 가석방 특혜를 받아 풀려났고, 약 1년 후 대통령 특별복권 특혜까지 받았다”며 “회사와 주주들에게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느낀다면 지금 회장 승진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적 리스크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시점이라 등기이사 복귀에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아직 진행되고 있는 재판도 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해 등기이사 회장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2.10.28 06:58
연예

[청춘은 맨발이다-83]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의 내막(하)

1970년대 초 TBC가 주최한 행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병철 삼성그룹회장·JP·영화배우 신성일·하나 건너 패티김(오른쪽부터). 신성일은 젊은 시절부터 명사들과 잦은 교류를 가졌다. 내가 몸 바치고 있는 영화계를 위한 일이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종합촬영소 건립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있었다. 종합촬영소 건립 반대를 주장하는 영화제작자협회를 중심으로 이름 있는 일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를 합쳐 100여 명의 진정서를 쥔 장병조 청와대 사회교육문화 비서관이 내게 마음을 열어보인 것은 새벽 1시 무렵이다. 장 비서관은 경북고 1년 후배다. "진정서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서의 내용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장 비서관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선배님, 절대 사적인 일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건 아니죠?""이건 영화계 백년대계의 사업이야." "알겠습니다. 선배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장 비서관은 우리 편이 됐다. 노태우가 집권하는 88년 13대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200억원이나 되는 종합촬영소 예산을 확보하려면 국회 통과와 경제기획원 승인이 필요했다. 먼저 호형호제하는 민주당 정대철 국회 문광위원장과 만났다. 정 위원장은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물었다. "형,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국회 문광위에 안건 올라오면 찬반 논의하지 말고 그냥 묵인만 해줘." 김동호 위원장이 코치해준 대로 한 대답이다. 나는 여당인 민자당 간사를 맡고 있는 함종한 의원을 찾아갔다. 종합촬영소 건립 안건을 상임위에 상정해달라고 하자,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야당 쪽에서 반대하지 않을까요?" 야당인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강삼재 의원에게도 낙점을 받아 놓았기에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야당 쪽에서는 아무 말 안하기로 했어요." 종합촬영소 건립 안은 국회에서 아주 순조롭게 통과됐다. 그 무렵 나는 뉴욕액팅아카데미 설립 문제로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그 비행기가 알래스카를 경유하는 동안, 승객들은 한 시간 가량 앵커리지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박준규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인 김천 출신 박정수 의원(부인 이범준 박사)이 마침 거기 있는 것 아닌가. 박 의원은 박 의장을 모시고 뉴욕에 간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나는 1층 비즈니스석에, 박 의원과 박 의장은 2층 퍼스트 클래스석에 타고 있던 것이다. '이 때다' 싶어 박 의원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 박 의장 옆좌석에 앉게 됐다. 뉴욕에 가는 기내에서 박 의장에게 영화계의 현황과 종합촬영소 건립의 필요성을 설명드렸다. 경북고 총동문회장인 박 의장은 7선 국회의원으로 파워가 막강했다. "알았어, 내 도와줄께." 박 의장은 경제기획원에서 승인이 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신영균의 민자당 성동 갑구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박 의장이 축사 중 종합촬영소 건립 예산 20억원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직접 발표했다. 정부는 이 20억원을 발판으로 종합촬영소 건립에 필요한 200억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는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 450억원 가까운 돈이 투자되어야 했다. 남양주종합촬영소 소장인 김덕행의 요구를 들은 나는 16대 국회 문광위 시절엔 남양주종합촬영소 디지털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20여년이 흐른 지금, 남양주종합촬영소는1200억원대의 큰 자산이 됐다. 원래 종합촬영소 터로는 용인 민속촌이 물망에 올랐다. 당시 인수가격이 예산과 꼭 같은 200억이었다. 그러나 민속촌이 비행기 항로여서 동시 녹음을 할 수 없는 점 때문에 남양주로 결정됐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08.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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