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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가르치지 말고, 움직이게 하라

“눈물이 나더라고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김희진은 지난달 태국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고 돌아와 스테파노 라바리니(41·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관련 일화를 전했다. 대회 당시 김희진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소속팀(IBK기업은행)에선 센터와 라이트(어포지트)를 오갔는데, 대표팀에선 붙박이 라이트로 뛰었다. 게다가 종아리 부상으로 통증에 시달렸다. 라바리니 감독은 힘들어하는 그에게 “넌 나의 어포지트(You’re my opposite)”라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감독님이 곰 인형을 가리키며 ‘저렇게 가만히 있는 인형이 아니라 배구를 하는 너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대표팀 에이스 김연경은 올림픽 예선 도중 복근을 다쳤다. 라바리니 감독은 출전 강행 의사를 밝힌 그를 만류했다. 대신 태국과의 결승전에 내보냈다. 그는 “감독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라바리니 식 커뮤니케이션이다. 투혼을 강요하지 않는다. 진심이 묻어난다. 그리고 선수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해한 걸 정확하게 수행했다. 한 달도 더 지난 여자배구 올림픽 예선 얘기를 꺼낸 건 여자농구 때문이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도 이달 초 도쿄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했다. 그런데 귀국길이 소란스러웠다. 찬사 대신 비판이 쏟아졌다. 주전 선수만 혹사하는 이른바 ‘몰방(몰빵)농구’ 탓이다. 여자농구 대표팀은 영국전에서 12명 중 6명만 뛰었다. 그중 세 명은 40분 풀타임을 뛰었다. 몸싸움에 시달리는 센터 박지수가 37분19초를 뛰었다. 요즘 팬들은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한다. 그런 팬들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11일 공항 입국장에서 박지수는 “태극마크를 달고 창피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 “감독과 불화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 발 뺐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소통 부재’의 단면을 보여줬다. 차라리 불화라고 하는 쪽이 나을 뻔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18일 경기력 향상위원회를 열어 이문규 감독을 재신임하지 않기로 했다. 추일승 위원장은 “전략적 선택(몰빵 농구)은 이해한다. 다만 현대 스포츠에 필요한 수평적인 관계에 있어 소통이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선수 출신이 아니다. 배구가 좋아 10대 때 유소년팀 어시스턴트 코치가 됐다.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팀 코치를 거쳐, 세계적인 클럽팀을 맡았다. 그의 성공 비결은 ‘디테일’에 있다. 상대 리시브와 세터의 거리를 걸음 단위로 확인해 수비, 블로킹을 준비한다. 태국전을 앞두고도 오랜 시간 상대 경기 비디오를 보며 분석했다.선수 입장로선 귀찮고 힘든 과정이다. 목적과 이유를 모르면 더더욱 그렇다. 시간차 공격이 주특기인 양효진에게 라바리니 감독은 속공을 주문했다. 그는 “감독님은 로테이션 하나마다 개별 지시를 내린다. 익숙하지 않은 공격 패턴도 익혀야 해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선수들이 기꺼이 받아들인 건 ‘왜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비디오를 보며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덕분에 좀 더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자배구 선수들이 지도자를 부를 때 ‘선생님’이라고 한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아니다. 여자농구 쪽도 비슷하다. 수직적 관계의 단면이 드러나는 호칭이다. 소통의 시대다.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효경 배구팀장 kaypubb@joongang.co.kr 2020.02.2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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