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더욱이 수많은 스타들이 뜨고 지는 스포츠 세계에서 오랜 세월 동안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프로농구 전주 KCC의 가드 이상민(34)에게는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연세대에 입학한 1991년부터 `오빠부대`의 원조 격으로 폭발적 인기를 모으더니 무려 15년 세월 동안 팬들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마감된 2005~2006시즌 프로농구 올스타전 팬 인기투표에서도 이상민은 10개 구단 전체 선수들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중간 집계(1월 26일)에서 이상민은 총 4만 7008표를 획득, 2위 김승현(대구 오리온스.3만 7992표)을 9000여 표 차로 제치고 1위를 굳게 지켰다.
오는 20일 발표 예정인 최종 결과에서 1위가 확정될 경우 이상민은 올스타전 팬 투표가 처음 실시된 2001~02시즌 이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5년 연속 1위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프로야구에서는 김봉연 등 네 명이 `고작` 2년 연속으로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를 차지했고, 프로축구에서는 2년 연속 1위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해도 이상민의 인기가 어느 정도 대단한 것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매 경기 3000~4000명의 관중을 몰고 다닌다는 `영원한 오빠` 이상민을 지난 15일 KCC의 훈련 장소인 경기도 용인시 마북리의 현대인재개발원에서 만났다.
■인기 비결? 저도 몰라요
"싫지는 않지만 좀 쑥스럽네요." 5년 연속 올스타 투표 1위가 유력하다는 말에 이상민은 다소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팬 클럽 회원들이 찾아와서 `오빠가 은퇴할 때까지 1등을 시켜 드리겠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나이도 먹고 성적도 안 좋아 쑥스러우니 그만 해도 된다`고 말렸는데 …. 농구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스타들이 치고 나와야 하는데 (김)승현이 (김)주성(원주 동부)이 외에는 눈에 띄는 후배가 없어서 걱정이에요. 90년대 초.중반 대학 농구 스타들이 다 은퇴해 버리면 농구 인기가 떨어질 수 있잖아요."
이상민은 지난해 말 손가락 부상을 당해 한 달 여를 쉬었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팬 투표 1위를 굳게 지킬 수 있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것도 아니지만 정말 저도 모르겠어요. 좀 알려 주세요. 한 번은 여성 팬들한테 `나를 왜 좋아하느냐. 이성으로서 좋아하느냐, 아니면 플레이가 좋은가`라고 묻기까지 했어요. 팬들이 `반반씩`이라고 답하더군요."
의례적 겸손이겠거니 생각하고 약간은 짓궂게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단지 농구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에요. 제가 골을 많이 넣거나 엄청나게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혹시 카리스마를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경기 중에 잘 흥분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 것 아닌가?
"원래 성격이 그래요.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별 말 없이 참는 편이에요. 그러면 건강에 나쁘다던데 걱정이에요."
-팬 관리를 잘 하는 것 같은데?
"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인터넷 팬 카페(회원 수 1만 8000여 명)도 잘 보지 않고 글은 2년 전에 우승하고 딱 한 번 남겼어요."
-그럼 깔끔한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지?
"전혀 안 그래요. 주위에서 어려 보인다고는 하지만 머리를 손질하지도 않고 …. 외출할 때도 여름에는 반바지, 겨울에는 트레이닝복만 입어요."
묻는 질문마다 손사래를 치며 애를 먹이더니 결론적으로 이런 견해를 밝힌다. "제 팬 중에 99.9%는 여성이에요. 저 보고 아직도 결혼한 것 같지가 않대요. 아마도 어리고 약해 보여서 여성의 보호 본능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성격이 바뀌었어요
경기장에서 만나는 이상민은 무척이나 과묵하고 차가운 인상을 지니고 있다. 경기 중에는 물론이고 연습 때도 웃거나 떠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인터뷰를 위해 2시간여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눈 이상민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이야기(특히 학창 시절 얘기)를 한번 시작하면 마치 `수다쟁이`처럼 신바람을 냈고 사진 촬영 때나 인터뷰 중에도 얼굴에 시종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었어요. 말 주변이 없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숫기가 없었죠. 인터뷰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고 …. 그래서 방송 출연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도 차갑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대학 후배 서장훈(서울 삼성)이 `형은 다 좋은데 가끔 너무 냉정하다`고 말해 놀라기도 했어요."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팬들 덕분이에요. 친한 팬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에 비해 훨씬 말이 많아졌어요. 아내가 팬들한테 내가 수다쟁이라는 얘기를 듣고 `집에서도 한 번 그렇게 해 봐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두 번이나 농구를 그만두려 했죠
홍대부고 시절부터 스타 반열에 오른 이상민에게도 선수 생활의 위기는 있었다. 열한 살이던 성북초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으나 키(6학년 때 149cm)가 그다지 크지 않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홍대부중 시절 부모는 그에게 농구 대신 공부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구가 재미있었고 감독이 극구 만류해 농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위기는 뜻밖에도 수천 명의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니던 연세대 시절에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포지션(가드)이 같은 유재학 감독님(현 울산 모비스 감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도 꼭 연세대를 가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 보니 꿈꾸던 대학 생활과는 너무나 달랐어요. 선배를 신(神)처럼 모셔야 하는 단체 생활을 정말 참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1학년 때 부모님께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의외로 부모님이 `그래, 힘들면 그만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이상하게 오기가 생겨서 농구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일 그 때 농구를 포기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축구를 좋아했으니 축구 선수가 됐을까, 아니면 평범한 회사원이 됐을까. 낯을 가려서 선생님은 안됐을 거예요. 대학 때도 교생 실습을 나가기 싫어서 체육교육과가 아닌 경영학과를 택했으니까요."
■이제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해야죠
대부분의 운동 선수에게 은퇴나 이후 계획을 물으면 십중팔구 "최대한 선수 생활을 오래 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이상민은 달랐다. "일단 계약 기간인 내년까지 뛰고 은퇴 여부를 고민해 봐야죠." 어쩌면 다음 시즌 뒤 유니폼을 벗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허재 KCC 감독은 39세까지 선수로 뛰었는데 `고작` 35세에 현역 생활을 마감하려 하다니 ….
"오래 전부터 좋을 때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허 감독이나 강동희 코치(원주 동부)가 현역 막판에 10분 정도밖에 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주위에서 좀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하라고 조언하고 우승을 한 번 더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고민 중이에요."
은퇴 후 계획도 뜻밖이었다. 당연히 지도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지도자는 별로 안 끌려요"였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므로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FA 계약을 하면서도 지도자 연수나 은퇴 후 코치 보장 같은 조건은 넣지 않았어요. 해외 유학을 가더라도 농구보다는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싶고 …. 그렇다고 농구 말고 다른 새로운 일을 생각해 둔 것은 아니라서 고민이에요. 우선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를 결정한 뒤 그 다음을 생각해 봐야죠."
과연 팬들은 2년 후에도 코트에서 이상민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영원한 오빠`를 만나게 될 것인가. 이상민이 15년 넘게 뜨거운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차가워 보이면서도 부드러운 표정, 순수하면서도 매서운 정열을 지닌 눈빛, 그리고 솔직 담백하게 말하면서도 무언가 깊은 속내를 품고 있는 듯한 그만의 `신비감` 때문은 아닐까.
대학 시절 하루 팬 레터 1000통
-쓰레기 속에 쪽지 보낸 팬 가장 기억 남아
"그때는 팬 레터가 하루에 1000통씩 왔었죠."
이상민은 1990년대 초.중반 대학 농구 전성기의 주역이었다. 문경은.우지원.김훈.서장훈 등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무적 연세대`를 이끌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상민은 "팬들의 열기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라며 흐뭇한 표정으로 팬들과의 추억을 털어놓았다.
"한 번은 (문)경은(서울 SK)이 형, (우)지원(울산 모비스)이랑 누가 더 팬 레터를 많이 받았는지 세어 보기도 했다. 지원이가 조금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둘러싸 움직이지 못한 것은 일상사이고, 숙소 앞에 몰려든 팬들 때문에 밥을 먹으러 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 아파트 담벼락에는 팬들이 온갖 응원 문구를 적어 놓아 이웃들이 항의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팬 레터와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묻자 "쓰레기를 받은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휴지가 잔뜩 들어 있는 쓰레기를 보내온 팬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지 말고 모범적이고 인정받는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상민은 "언젠가 프로필에 취미를 독서라고 썼다가 팬들이 책을 너무 많이 보내 줘서 곤혹스러웠던 기억도 있다. 옷이나 한약을 보내 주는 팬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 장난감을 많이 받는다"며 "학생들이 적은 용돈으로 선물을 준비하는 게 부담스러워 요즘은 팬 클럽 회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없으니 제발 선물을 보내지 말라고 한다"며 웃었다. 그래도 팬들은 지난 14일 밸런타인 데이 때 용인의 KCC 숙소까지 찾아와 그에게 초콜릿을 전해 주며 여전한 사랑을 보여 줬다고 한다.
1999년 결혼, 아내도 이제 여성팬에 무덤덤
함께 못해 시무룩한 아이들 보면 마음 아파
"이제는 무덤덤해요."
수많은 여성 팬들로부터 뜨거운 애정 공세를 받는 남편을 둔 아내의 심정은 어떨까. 이상민은 아내 이정은 씨(35)에 대해 "결혼 초기에는 여성 팬들 때문에 좀 신경을 썼는데 이제는 초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학 시절 잠시 사귀다 헤어진 뒤 5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나 1999년 결혼에 골인한 그는 "아내가 배려를 많이 해 준다. 내 성격이 예민한 것을 알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풀어 주려고 애쓴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여섯 살 된 딸과 네 살 된 아들을 두고 있는 이상민은 `스타 아빠`로서 갖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그는 "시즌 때는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애들이 `아빠는 추울 때(겨울)는 밖에 있고 따뜻할 때(여름)만 집에 있다`라고 한다"며 "내가 봐도 남편과 아빠로서는 별로 점수가 높지 않다. 유치원 행사에 거의 참가하지 못해 아이들이 시무룩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여름 비시즌 때는 같이 놀이터에서도 놀아 주며 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상민은 또 "아들이 농구 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남자는 물론 여자 프로농구에까지 관심을 갖고 `아빠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데 아내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본인이 원하면 시키자`고 한다"며 "그런데 부자(父子) 농구 선수 중에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잘한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라고 애틋한 부정(父情)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상민은 누구?
▲생년월일/출생지=1972년 11월 11일/서울 ▲신장/체중=183cm/77㎏ ▲포 지션=가드 ▲출신교=성북초-홍대부중-홍대부고-연세대 ▲발 크기=280cm ▲ 100m 달리기=13초 ▲가족=아내 이정은 씨(35)와 1남 1녀 ▲혈액형=O형 ▲종 교=기독교 ▲별명=이쌍, 컴퓨터 가드, 산소 같은 남자 ▲존경하는 사람=부모 님 ▲취미=영화 감상 ▲좋아하는 음식=한식 ▲프로 데뷔=1997년 대전 현대(현 KCC) ▲연봉(2006년)=3억 2000만 원 ▲수상 경력=1997~98, 98~99 시즌 MV P, 2003~04 챔피언 결정전 MVP, 01~02 시즌 스틸 1위 ▲프로 통산 성적(2월 17일 현재)=총 9시즌 384경기 평균 11.3득점, 6.9어시스트, 4.0리바운드, 1. 75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