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경남 고성, ‘공룡 발자국 위로 쏟아지는 남해바다를 보았는가’
봄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세월의 흐름을 잡아 둘 수 있다면 계절의 변화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며칠 전 한 지인이 봄을 만나기 위해 남쪽 바다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뒤질세라 부랴부랴 행장을 꾸렸다. 목적지는 경남 고성. 임진왜란 당시 호리병 같은 당항포 앞바다에 왜군을 몰아넣은 후 무려 57척의 배를 침몰시킨 당항포해전, 미국 콜로라도와 아르헨티나 서부 해안과 함께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등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그 밖에 많은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만큼 작고 외진 고장이다. 그런데 오는 4월이면 2006 경남 고성 세계 공룡엑스포(4월14일~6월4일)라는 국제 행사를 치른다. 고성은 지금 공룡을 주제로 한 세계적 관광지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봄이 왔다는데 …
차에서 내리는 순간 청량한 바닷바람이 공해에 찌든 폐를 깨끗이 청소해 주는 듯하다. 서울은 가는 겨울이 앙탈을 부리면서 옷깃을 파고드는데 이곳은 오히려 두꺼운 외투가 거추장스러울 정도다.
아직 봄이 왔다는 신호를 눈으로 실감하기는 어렵다. 어쩌다 보이는 동백이 처연하게 붉은 꽃잎을 떨구고 있지만 봄의 상징은 아닌 듯싶다. 하긴 지난달부터 꽃망울을 터뜨렸을 테니 겨울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찾으라면 겨울을 이겨 내고 파란 새싹을 밀어 올린 보리 이삭을 들 수 있다.
그래도 봄은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느끼는 것도 계절의 변화다. 훈훈한 남풍이 얼굴을 간지른다. 남녘은 이미 지금 봄의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경상남도 고성입니다
우리나라에 고성이란 이름을 가진 고장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금강산 가는 길목인 강원도 고성이고, 다른 하나는 통영 거제 진해 마산 진주 사천 등 6개 시에 둘러싸여 있는 경상남도 고성이다. 공통점이라면 두 곳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남 고성은 강원 고성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을 위주로 살아온 터라 관광 자원을 알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옆 동네에 가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숨겨진 비경을 찾아서
고성의 상징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그런데 숨겨 놓은 보석이 또 있다.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상족암과 천 년을 훌쩍 넘기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수암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품`들이다.
▲상족암: 조금 멀다. 고성읍에서 구불구불 2차선 도로를 30분 가까이 달려야 닿는다. 얼마나 꼭꼭 숨겨 놓았는지 수줍은 색시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다가 길을 돌아 바닷가 경사를 따라 내려가니 그제야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청계천 헌 책방.` 상족암의 첫인상이다. 켜켜이 쌓아 놓은 수만 권의 책처럼 두께 5㎝내외의 얇은 바위들이 마치 시루 속의 떡처럼 겹쳐져 있다. 이 바위는 지질학 용어로 수성암이라 불린단다.
산책로를 따라 끝까지 가니 왼쪽 바닷물이 드나드는 바위 위에 사람 얼굴만한 구덩이가 2열로 늘어서 있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다. 그 뒤로 상족암이 가로막고 있다. 상족암의 얼굴은 그 반대편에 있다. 썰물 때는 바위를 돌아 건너편으로 갈 수 있지만 물이 차는 밀물 때는 산책로를 통해 바위 뒤로 넘어가야 한다.
왜 상족암(床足巖)이라 했을까. 실제 마주하니 밥상 다리처럼 생겼다. 오랜 세월 바위가 융기하는 동안 파도가 깎아 낸 흔적이다. 다리 아래에는 미로가 있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상족암은 조그만 해수욕장을 품은 경남 청소년수련원 오른쪽에 있다. 왼쪽에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는데 완전히 물이 빠져야 볼 수 있다. 하지만 훼손에 대한 우려로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상족암 바로 위에는 공룡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개관한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실물 크기의 공룡 전신 골격 복제품 10종, 익룡 전신 골격 복제품 3종, 공룡 골격 진품 4종 등 수백여 점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 어른 3000원.어린이 1500원. 055-670-2820(www.goseong.go.kr).
▲문수암: 해발 548m의 무이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이 절은 신라 성덕왕 5년(70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의상대사가 세운 도량은 이곳 말고도 연화산 도립공원 내 옥천사, 하이면 향로봉 중턱에 자리한 운흥사 등이 더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찰을 세웠다는 말인지 ….
정상 바로 아래 절벽에 의지한 법당은 3층으로 돼 있는데 마치 티베트의 사찰을 연상시킨다.
문수암에는 설화가 있다. 의상대사가 남해 금산으로 가는 도중 무이산 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는데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다음날 한 걸인을 따라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 걸인을 만나게 됐고, 결국 이른 곳이 지금의 문수암 자리이다. 의상대사가 경치에 반해 사방을 둘러보는 사이 이 걸인은 한 바위 속으로 사라졌고, 그 바위에는 문수보살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의상대사는 그 걸인이 문수보살의 현신임을 깨닫고 문수암을 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 법당 뒤에 커다란 석벽이 있는데 10분 이상 바라봐야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일 게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깨끗하게 포장돼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예전에는 깊은 산중이었을 문수암이 유명세를 타는 것은 문수보살에 얽힌 설화에다가 탁 트인 조망 때문이다. 암자에 올라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앞 수태산 능선에 서 있는 보현사 너머로 한려수도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험한 산세와 수려한 풍광으로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했다고 한다. 무이산(武夷山)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 밖의 볼거리
연화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옥천사(사진)는 역사가 무려 1330년이나 되는 고찰이다. 의상대사가 문수암보다 30년 먼저 창건했다. 대웅전과 그 좌우에 스님들이 거처하던 적묵당.탐진당, 그리고 맞은편 누각 자방루가 서로 처마를 맞대고 특이한 건물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 사찰에는 고려시대 만들어진 임자명반자(대중을 모을 때 치는 쇠북.보물 제495호) 등 많은 불교 유산들이 있다.
또 고성 읍내에는 6세기 전반 축조된 소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군과 갈촌 탈박물관, 경남 고성 세계엑스포 주 행사장인 당항포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 해전을 기리는 역사관이 들어서 있다.
■가는 길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진주를 지나 고성IC에서 나오면 된다. IC에서 나와 우회전하면 바로 당항포관광지로 연결되고. 반대로 좌회전 하면 고성읍·상족암·문수암·옥천사 등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고성=글·사진 박상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