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부터 꿈꿔온 <맘마미아> 에 출연하게 돼 요즘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콧노래를 부를 정도다. 마지막 공연까지 무사히 마치는 게 지금 최대의 목표다.”
비장한 명성황후에서 모텔 주인 아줌마로 거듭난(?) <맘마미아> 의 이태원(39)은 연일 계속되는 연습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흥분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달 18일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올리는 <맘마미아> 에서 박해미와 함께 도나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태원은 도나 역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억척스런 여성이다. 이태원이 줄리어드스쿨에 입학하고. 브로드웨이에서 <왕과 나> 의 티앵 왕비 배역을 맡고. 또 <명성황후> 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배경을 보면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억척스런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맘마미아’는 ‘어머나. 세상에’라는 뜻으로 아바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 이밖에도 ‘허니 허니’·‘댄싱 퀸’·‘머니. 머니. 머니’·‘수퍼 투루퍼’·‘워털루’등 22개 히트곡이 뮤지컬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술의 전당 앞 카페에서 진행된 이날의 인터뷰를 노래 제목 그대로 해보았다.
-Take Chance On Me
“인생에 세 번 기회가 온다지만 나에게 오는 행운을 앉아서 덥썩 받은 적이 없다. <왕과 나> · <명성황후> 때도 그렇고 이번 <맘마미아> 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운을 잡은 케이스이다. 2004년 <맘마미아> 초연 때는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나 자신을 영국 연출자가 원하는 ‘도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도 떨어졌다면 다음 오디션에 또 도전했을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가 더 많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Thank You For the Music
“음악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수학과 과학을 잘해 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 가려고까지 했다. 그게 좌절되자 음악이 다가왔다. 고교 때 단 몇 개월 성악 공부해서 줄리어드스쿨에 들어갔다. 기교보다도 음성에 반해 뽑았다고 심사했던 교수가 나중에 말해 주었다. 정통 성악을 공부했지만 뮤지컬에 매력을 느껴 <왕과 나> 의 티엥 왕비로 1200여 회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무대에 섰다. 이제 크로스오버 가수로도 영역을 넓히고 싶다. 2001년 앨범 <더 퀸> 을 낸 것도 그 일환이다.”
-Knowing Me. Knowing You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서 최선을 다해 주고. 그 다음에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한다. <명성황후> 에 출연하고 싶어서 생면부지의 윤호진 에이콤 대표에게 대뜸 전화 걸어서 나를 알렸다. 그런데 그것 갖고는 부족할 것 같아서 <명성황후> 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 에이전트 섭외 등 제반 비즈니스를 모두 처리해 주겠다고 다시 제안했다. 윤 대표가 이를 마다할 리 없었다.”
-I Have A Dream
“너무 큰 꿈을 갖고 있으면 불행해지기 쉽다. 이룰 수 있거나 간절히 원하는 작은 꿈을 늘 앞에 두고 실현해 왔다. 우리나라 관객이 지켜보는 무대에 서고 싶을 때는 <명성황후> 를 꿈꿔 왔고 이루어 냈다. 한때 방송사에서 TV토크쇼 호스트 쪽으로 가능성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작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말은 없더라 하하하.
-One Of Us
“유달리 후배들이 많이 따른다. 또 도와 주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는 나보고 사람 관리를 잘한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인복이 많은 편이라고 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남 얘기 잘 들어주고 적절한 코치를 잘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인생 문제든 비즈니스 문제든 카운슬링에는 자신이 있다. 거의 하루에 한 권 정도 읽는 책 덕분이다. 수필은 물론 시드니 셀던의 추리소설 마니아다.”
-Money Money Money
지난해 월세 신세를 모면하기 위해 갖고 있는 돈 탈탈 털고 대출 왕창 받아 용인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샀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처음 올 때 완전 빈손으로 왔다. 그때는 주변 분들이 생활비 보내 줬다. <명성황후> 단 몇 개월 한다고 해서 큰 돈 만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돈 생각했으면 정말 한국으로 오지 않았다.”
-The Winner Takes All
승리를 얻기 위해선 눈앞의 이익을 좇아선 안된다. <명성황후> 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다. 초봉 1억짜리 배우가 흔한 게 아니다면서. 하지만 도와 줄 사람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자리 잡기 위해선 그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했다. 이제 <명성황후> 덕분에 한국 뮤지컬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됐고. 교수로도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얻은 걸 생각하면 그때 치룬 수업료가 비싼 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