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허진의 축구이야기]‘징크스’ 존중하되 두려워 말라
월드컵 때마다 회자되는 미신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다. 꼭 말하는 반대방향으로 실현되는 펠레의 저주나 골대를 자주 맞추면 패한다는 등속의 각종 징크스, 선수들 개개인의 습관과 결부된 우연과 필연의 가쉽거리들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정말 잔혹한 장난을 즐기게 만드는 운명의 신이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특히 조편성 하나만 보아도 그렇다. 지난 대회 독일과 독일인 감독이 이끄는 카메룬의 대결, 스웨덴인 에릭손이 이끄는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두 차례에 걸친 월드컵 조예선(잉글랜드는 1968년 이래 무려 37년간 스웨덴을 이겨 본 적이 없다!!), 크로아티아계 이민자들이 다수 포진한 호주가 크로아티아와 한 조가 된 사연 등등, 보는 사람은 재밌지만 당사자들은 약간 머쓱한 운명의 대결구도가 그러하다.
물론 그들은 프로들이라 일단 필드에 서면 서로 야수처럼 충돌하기에 대부분은 우리가 염려하는 감성적 주저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나폴리에서 너무나 사랑받던 마라도나가 90년 이탈리아와 준결승을 치룰 때, 엄청난 수의 나폴리 시민들이 조국인 이탈리아가 아닌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를 응원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나폴리인들은 국가보다는 축구 그 자체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각 국가대표팀들의 지속적, 간헐적 징크스도 요사이 매스컴의 주요 밑반찬거리다.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고배의 잔을 마시는 포르투갈. 세계 최강의 리그를 보유하면서도 언제나 8강 주변만을 맴도는 스페인. 대회 때마다 슬로우 템포와 엉성한 조직력으로 시작하다 막판에 기사회생하는 이탈리아. 거기다 개최국 독일은 2000년 10월 이래 소위 축구강국들과의 대결에서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말하자면 만성은 아니고 일시적 변비현상인데 이게 이번 대회에서 극복이 안되면 결국 '만성'이 될 소지가 높다.
그럼 우리 대표팀은 어떤가? 2002년 이전까지 5차례 본선진출했음에도 불구, 단 1승을 올리지 못했던 지긋지긋한 '징크스'는 4강 진출로 해소된 듯이 보인다. 한데 아직도 또다른 '징크스'가 우리를 배회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건 아직도 한국이 적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는 '징크스'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본선을 앞두고 무슨 재수없는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32개국 중 가장 약체로 보이는 토고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경기운영을 그르치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 큰 부담없이 출전한다. 국민들의 기대치는 항상 높지만 주전의 부상 등 여러 이유로 해서 우승 가시권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 겸허함이 팀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밑져 보아야 본전이라는…
마지막으로 대 토고전을 앞두고 히딩크의 금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그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존중해라. 그러나 결코 겁먹지 말라. 너희들은 이길 수 있다."
베를린에서(주 독일대사관 참사관·2002년 월드컵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