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파문놀이'에 이어 '굴욕시리즈'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의 코믹한 모습에 이어 WBC 이치로가 굴욕시리즈의 맥을 잇더니 이제 월드컵 스타들로 확대됐다.
파문놀이가 말장난이라면 굴욕시리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주류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약점, 우스꽝스런 장면, 주위에서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어 뜻하지 않은 소외를 겪는 장면을 인터넷에 올려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게 특징. 특히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한국대표팀은 물론 1라운드에서 같은 G조에 편성된 토고·스위스·프랑스 관련 굴욕시리즈가 집중적으로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고, 소재를 제공하면서 그에 맞는 굴욕시리즈 생산을 촉구하기도 한다.
■G조 각국 말싸움에 즉각 반응
첫 상대 토고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아데바요르가 중국 언론과 인터뷰서 "한국 월드컵 4강은 전적으로 심판들 덕"이라는 도발적 발언을 하자 즉각 이를 응징하는 굴욕 사진이 인터넷에 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아데바요르(아스널)가 결정적 실축을 한 뒤 앙리의 '너 뭐 하니'라는 제스처에 엎드려 사죄하는 것 같은 동영상 캡처 사진을 올린 것.
또 오토 피스터 토고 감독이 "한국은 모로코보다 실력이 없다"라고 하자 누리꾼들은 토고의 한 선수가 피스터 감독의 지시에 저항하는 듯한 훈련 장면 사진으로 즉각 응징했다.
■월드 스타라면 …
월드 스타와 굴욕시리즈가 비례한다고 할 만큼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베컴의 굴욕'(심판에 읍소하는 모습), '나카타의 굴욕'(미남 베컴과 얼굴 대비), '호나우두의 굴욕'(팬사인회에서 봉변) 등 독일 월드컵에서 각국의 선봉에 설 핵심 스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찍힌 상식을 뒤집는 반전성 시리즈가 화제를 모으는 대표작이다.
■한국 대표는 오히려 인기도
G조의 한국 상대 국가에 대한 굴욕시리즈가 비꼬는 모습이라면 한국대표팀 23인과 코칭스태프에 대한 굴욕은 코믹하기만 하다. 굴욕시리즈 자체가 인기도를 반영한다고 생각될 정도. 이을용이 마치 무사처럼 서 있는 ‘중국 선수의 굴욕’은 이을용에게 전사라는 칭호를 안겨 준 사진이기도 하다. 이천수 팬을 자처하는 대학생 최대창(24)씨는 "비록 실수하는 모습을 담고 있더라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펌'을 권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밖에 신문·방송 보도진들이 선수들을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이를 익살스럽게 쳐다보는 '아드보카트의 굴욕', 팬사인회에서 사인 요청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만 몰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핌 베어백 코치의 굴욕'은 순간 포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굴욕시리즈는 인터넷 패러디 문화의 새 유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문'을 누르고 '굴욕'이 뜨는 이유에 대해 한 대중평론가는 "합성 사진에 대한 염증도 한 원인이지만 그보다 유명인들이 평소와는 달리 전혀 주변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데 대한 인터넷 카타르시스 문화의 하나라고 평가하고 싶다"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자극적·선정적으로 흐르는 점에 대해선 스타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생산할 수 있다며 경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