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35) 엔도어스 개발 이사는 한국의 스타 게임 개발자의 한사람이다. <라그로나크> <그라나도 에스파다> 의 김학규와 <바람의 나라> <리니지> 의 송재경 등과 함께 한국 게임업계를 이끌어왔다.
그가 ‘게임계의 이정재’로 불리는 것은 김학규나 송재경 같은 소위 ‘대박게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항상 ‘중박’ 이상의 성적을 냈고. 게임사나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개발자 중의 한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차지하는 한국게임계의 위상은 독특하다. 그는 다른 개발자와는 달리 ‘역사’라는 주제에 매달렸다. <충무공전> (1996) <임진록> (97) <임진록2> (2000) <거상> (2002) <군주> (2003) <타임 앤 테일즈> (2005)까지 그의 중심은 <문명> 시리즈로 유명한 시드 마이어처럼 늘 ‘역사의 자장’ 안에 있었다.
■대학 2학년때 <충무공전> 개발 <임진록> 100만장 판매
한국 게임의 초창기인 1992년. 홍익대 2학년 때 의기투합한 고등학교 동창 4명과 <충무공전> 으로 게임 개발의 첫발을 디딘 그는 그 멤버 그대로 게임을 만들어왔다. 특히 <임진록> 시리즈는 누적판매량 100만장이 넘는 실적을 보여주었다. 그가 매력을 느끼는 시기는 임진왜란 전후 시기다.
우선 “이 시기를 전후해 총이나 대포. 화차 등의 무기 체계가 달라졌다. 게임에 전쟁 장면의 화면을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어 유리하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이순신·도요토미 히데요시·이여송 등 3국의 영웅들이 등장하고. 3국의 당시 배경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역사물인 <타임앤테일즈> 의 개발을 마친 지난해부터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이 시기를 정통 역사물로 만드는 것. 내년부터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는 “크게 따져보면 아시아 3국이 실질적인 전면을 벌인 것은 그때밖에 없었다. 전무후무하다”는 그의 생각이 반영돼 있다.
여기에는 그의 아시아를 대표하는 정통 역사게임을 만들겠다는 집념이 숨어 있다. 수출을 해서 현지화 작업을 하겠다는 복안까지 마련했다. 한·중·일 다 참가한 전쟁이라 기존 조선 위주의 묘사를 벗어나 일본의 가토.명의 이여송 또한 균등하게 묘사해 다큐처럼 객관적으로 묘사하여 3개국을 아우른다.
■‘실화가 주는 감동’ 역사를 상상하게 하라
스스로를 “개발실에 처박혀 산다”고 표현하는 그는 전쟁사 마니아다. 가장 손에 꼽는 역사책은 <삼국유사> . 그가 임진왜란기에 매력을 느끼면서 이순신을 많이 등장시켰지만 그가 ‘영웅 이순신’보다 더 존경하는 인물은 유성룡이다.
“이순신은 시대가 만든 영웅이다. 이미 사람의 영역이 아니고 신격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유성룡은 현실적인 전략가다. 언제나 살아있는 사람이고 시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를 따라간다면 살아있는 시대와 만나게 된다.”
그는 세계사의 영웅들이 많지만 같은 업적을 보여주더라도 조상들에게서 느끼는 감흥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오류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사실이다. 행간의 뜻을 읽으면 그 때 있었던 일을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조상이 겪었던 일이니까 소설보다 훨씬 피부에 와 닿는다. 많은 이들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처럼 역사에는 실화가 주는 감동이나 안타까움이 있다.”
그는 게임하면서 역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홍보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기 어렵더라도 역사 속에 있는 인물과 사용자간의 교감. 같이 싸움을 하면서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때 영웅과 같이 아파하고. 인간적인 애정을 갖게 돼 역사를 외우지 않고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했다.
<거상> <군주> 통해 재테크와 민주주의 도입 군주> 거상>
그의 역사관과 게임관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거상> 과 <군주> 가 있다.
조선 후기의 모습을 담은 그의 게임 <거상> 은 임진왜란 이후 신분 이동이 심해지고 상공인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는 시대가 배경이다. 이 게임은 장사와 재테크를 도입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의 교재로도 쓰였던 이 게임은 전투 50%. 경제 50%를 목표로 했다. 물론 실제 유저들은 80~90%가 전투를 더 즐겼다. <거상> 의 후속게임 <군주> 에서는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개발자의 개입 소지를 없애고 사용자들이 스스로 선거를 통해 왕을 선출하고 내각을 구성한다. 자원배분은 내각에 일임한다. 주식 제도도 도입했다. 유저들에 의해 모든 것이 이뤄지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낸 것.
이후 <타임앤테일즈> 에서 세계사 차원의 시각을 게임에 도입한다. 처음에는 장보고가 등장하지만. 로마가 나오고 아더왕과 유비가 나오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퓨전적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