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김철민(48)씨는 올해 여름 휴가도 아예 포기했다. 매년 이맘때면 고국에서 오는 친지들의 방문 때문이다. 1980년대 말 유학 와서 현지에 정착하게 된 김씨는 여름마다 ‘친지 접대’ 전쟁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공항 마중부터 교통편 제공. 관광 일정. 심지어는 랭기지스쿨과 하숙집 등을 알아 놓지 않으면 뒷말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 성수기(7월 14일~8월 28일)에 접어들면서 해외 교민들에게 ‘고국 관광객 접대 비상’이 걸렸다. 올해는 원고(高)현상과 주5일제 근무 정착으로 해외 여행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막무가내식 방문 때문에 교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많은 교포가 살고 있는 미주 지역은 물론 동남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에는 고충을 토로하는 교민들의 볼멘소리가 넘치고 있다. 교민이 기피하는 대표적 친지 방문 사례를 살펴보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네가 해 주면 안되겠니?
요즘에는 패키지 관광을 구입해 현지 관광을 마치고 며칠 정도 현지 친지집에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중에는 아무 계획 없이 일단 친지집부터 찾는 막가파식 방문객도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관광 스케줄을 짜고 수시로 시내 관광 안내를 요구한다. “연락도 없던 동창이 부인과 함께 와 쇼핑에 따라가서 통역해 주고 밥도 사 줬는데 일 때문에 하루 시간 못 냈더니 대뜸 화를 냈다”(아이디 freewilly). “나이애가라 폭포 다섯 번 봤다. 이젠 현지 여행사 소개시켜 준다”(spirit90).
■이참에 우리 아이 좀 돌봐 줘
친구 부부가 초등학교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열흘 정도 머물다가 자녀의 어학 연수까지 욕심낸다. 자신들은 휴가 일정에 맞춰 귀국하고 자녀들은 비자 체류 기간(최대 6개월)을 이용해서 현지 어학원에 보낸다. 물론 자녀는 교민 가정에 맡긴다. 마지못해 그 자녀를 맡긴 하지만 이런 경우 교민 부부 사이에 분란이 일기 십상이다. “남편 체면 때문에 허락하긴 했지만 분통 터진다”(tommy). “아이 때문에 이민 왔는데 이게 웬 고생이람”(톰캣).
■물가도 싼데 네가 한턱 쏴라
원화 강세로 달러 아까운 줄 모르고 명품 쇼핑을 거침없이 해 대면서 현지 교민의 사기를 팍팍 꺾는다. 또 “집이 작네”. “차가 별로네” 타박도 많다. 어쩌다 같이 나가서 외식이라도 하면 계산할 때 은근히 교민 친구가 내주기 바라는 경우도 있다. “투잡으로 근근히 버티는데 3000달러 날렸다”(gracepark). “괜히 미국 와서 고생한다는 말 듣기 싫어 그냥 내가 낸다”(judy). 특히 물가가 싼 동남아 지역 교민들에게 이런 일들이 많다.
■매너를 어디에다 두고 왔나
친지집을 내 집처럼 쓰는 경우도 있다. 맞벌이 부부가 출근했다 집에 오면 온 서랍을 뒤져 본 흔적이 남는다. 방문객의 대학생 자녀들은 남의 서재 인터넷을 독점한다. 몇 시간씩 음악과 영화를 다운받기도 해 질리게 만든다. “자녀 연수 보낸다기에 현지 기숙사 알아보고 대신 접수했더니 ‘하숙비 들일 거면 뭐하러 거기로 보내냐’며 그냥 취소했다”(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