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 두 작품 서로 생존 경쟁 동성애 만화 제재·경고로 단명 6개월 연재 인기…혈서 팬레터도”
남도 아니고 한 작가의 작품 두 개가 서로 생존 경쟁을 벌일 수 있을까? 요즘 해외에서 만화 수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순정 만화가 원수연씨의 어두운 동성애 만화 <렛 다이> 와 드라마화한 발랄한 만화 <풀 하우스> 는 돌이켜 보면 묘한 천적 관계랄 수 있는 구도를 형성한 작품들이다.
세상에 존재를 먼저 드러낸 쪽은 <풀 하우스> . 1994년 무렵 순정 만화 잡지 <댕기> 를 살려 보겠다는 일념으로 황미나·김혜린씨와 셋이 의기투합해 내놓게 된 작품이다. 그들은 자기 작업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순정 잡지의 인기에 불을 붙이고자 했다.
원씨의 <풀 하우스> . 황씨의 <레드문> . 김씨의 <불의 검> 등 세 개의 대작이 이 결의에 따라 탄생했다( <불의 검> 은 약간 먼저 시작했지만).
문제는 사정이 어려워진 <댕기> 가 몇 달 동안 고료를 체불했을 뿐만 아니라 단행본 판매 인세도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 충성을 다했건만 배반당했다는 생각을 한 원씨가 95년 <이슈> 의 창간호 때 러브콜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댕기> 를 떠나 버렸다. 사정도 모르는 만화팬들은 무책임하게 옮겼다면서 작가를 욕해 댔다. <이슈> 측은 창간호임을 내세워 그에게 새 작품을 요구했다. 한창 탄력받고 있는 <풀 하우스> 를 중단시켜야 했다. 이런 사정으로 탄생한 작품이 동성애 만화 <렛 다이> 다.
비록 6개월 연재했지만 독자들은 중독 증세를 보였다. 고등학생 다이와 재희의 무섭고. 어둡고. 강렬한 사랑은 한 마디로 ‘크레이지 러브’였다.
한 독자는 작가에게 B4지보다 큰 종이에 한 편의 시와 ‘다이 ♥ 재희’ 문구를 쓴 혈서 편지를 보내왔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으로 썼다는 내용과 함께. 동성애자 아들을 둔 59세의 한 어머니는 이 만화를 읽고 집에서 쫓겨난 아들을 이해하게 됐다며 눈물 어린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렛 다이> 는 단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동성애 만화라는 점 때문에 제재·경고를 여러 번 받았다. 당시 한 번만 더 경고를 받으면 잡지 자체가 폐간되어야만 했다. <렛 다이> 를 끊기 싫었지만 작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풀 하우스> 를 다시 잡고 99년까지 연재했다.
<풀 하우스> 를 끝내고는 아쉬움이 많았던 <렛 다이> 를 잡고 2004년까지 진행했다. <렛 다이> 이후에는 사정 때문에 온라인에서 <풀 하우스2> 를 연재하고 있다.
분위기가 밝고 독자의 폭이 넓은 <풀 하우스> 와 치명적 사랑으로 독자를 푹 빠지게 한 <렛 다이> . 두 작품은 공존할 수 없었다. 작가는 어떤 작품에 더 애정이 있을까? 물론 숱한 수난을 당한 <렛 다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