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로키스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2002년 4월26일 로키스의 4번째 감독으로 선임돼 메이저리그 ‘스키퍼(skipper)’의 길에 들어섰다. ‘스키퍼’는 감독을 의미하는 구어체 표현인데 기자들이 종종 친근감을 나타내기위해 쓴다.
취재를 하며 옆에서 허들 감독을 보면 고교 시절 미식 축구 쿼터백으로 날리던 체구에 짧게 깎은 머리. 붉은 얼굴.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 때 종종 마시는 캔 맥주에 큰 허스키 목소리까지 모두가 아주 다혈질의 성격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김병현이 다저스타디움에서 300승 투수 그렉 매덕스와 맞대결을 펼쳤다가 패한 9일 LA 다저스전 후 클린트 허들 감독은 로키스를 취재하는 콜로라도 지역 기자와 언성을 높혔다. 기자는 허들 감독에게 ‘2-1로 앞선 상황에서 BK가 동점 솔로홈런을 맞고 다음 타자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하니까 곧 바로 마운드에서 끌어 내렸다.
투수 교체를 그렇게 서둘 정도로 급박한(urgent로 표현) 상황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허들은 “당신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급박하다는 것이었다. 급박한가 아닌가는 내가 판단할 문제이다. 당신 생각과는 상관없다”고 날을 세웠다.
패장의 신경을 건드리는 기자와 흥분해서 대답을 하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당시 김병현은 6이닝 8안타 3실점의 투구 내용으로 결국 패전투수가 됐고 투구 수는 93개에 스트라이크 53개였다.
김병현의 그 다음 선발 등판은 14일 시카고 컵스와의 홈 게임이었다. 그 경기에서도 김병현은 6이닝 밖에 던지지 않았다. 7안타 4실점으로 다소 부진하기는 했으나 투구 수는 87개(스트라이크 57)에 머물렀다.
이번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김병현은 7월29일 샌디에이고전에서는 113개의 공을 던지며 7⅔이닝 5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8월3일 밀워키전에서도 8이닝 동안 7안타 1실점의 빼어난 투구 내용을 선보였으며 투구수는 106개에 이르렀다. 2경기 연속 100개 이상을 던지다가 다저스전과 시카고 컵스전은 90개 안팎을 던진 상황에서 교체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콜로라도가 선두 LA 다저스와 5경기 차(17일 현재) 밖에 나지 않고 있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상황에서 허들 감독의지극히 당연한 욕심과도 무관하지 않다. 허들 감독은 메이저리그 스키퍼 생활 5년 만에 처음으로 8월에도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남아 있자 급해진 것이다.
19일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전에 선발 등판한 김병현은 초반부터 조급한 모습이었다. 아차 실수를 하면 바로 교체를 당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다보니 투구 템포가 빨라져 볼 끝의 움직임을 빠르게 잃어갔다. 3-3 동점에서 김병현이 5회말 연속 볼넷을 내주자 로키스 쪽에서는 투수코치가 올라오고 불펜으로 전화를 걸고. 구원 투수가 몸을 풀고 법석이 났다.
감독이 급하면 선수는 더 정신을 못차린다. 결국 김병현은 5회도 못 마치고 교체됐다. 김병현은 감독이 언제 마운드에 올라오나 신경이 곤두서 정작 자신의 투구에 집중을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