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인생은 4전5기다] ‘챔피언 홍수환’ <7>
이쯤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야겠다. 차츰 파이터의 세계에 빨려들던 그때를.
나는 4남 3녀의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강원도 황지에서 탄광 관련 일을 하시면서 서울에 들르시곤 했다. 모두들 어렵게 살 때이지만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좀 과장해 말한다면 우리 집에만 TV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 이름도 까먹지 않는다. '실바니아'라고 하는 흑백 진공관 TV였다.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그런대로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성북구 돈암동에서 살았던 나는 말 그대로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어찌나 장난이 심했던지 다섯 살 땐 신문에 나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유명할 팔자였나 보다. 군용 트럭을 마음대로 운전하다 남의 집을 부셨던 것이다.
어느 날 육군 소령인 작은 외삼촌이 운전병과 함께 우리집에 왔다. 운전병은 이병 아니면 일병이었던 듯싶다. 운전병이 트럭의 짐을 내리는 중에 다섯 살 꼬마인 내가 몰래 운전석에 탔다. 전혀 자동차의 구조를 몰랐지만 악마가 도왔는지 척척 트럭의 잠금 장치를 해체해 갔다.
우선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다. 다음엔 낑낑 거리며 잡아당겼던 기어가 운전 상태로 들어갔고, 불행하게도 발 밑 세 개의 클러치 중에서 정확하게 오른쪽 맨 마지막에 있던 액셀러레이터를 눌렀다.
그 결과 "붕"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고 나간 트럭의 주둥이가 남의 집에 박혀 버렸다. 어머니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다 물어냈다. 아버지는 나 대신 오히려 운전병을 혼낸 듯하다. 그리운 사람과 재회하는 프로그램에 출현한다면 그 운전병 아저씨를 가장 만나고 싶다.
나는 일명 '요비링'으로 온 동네에 유명했다.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에 재미가 들렸다. 사람들이 나와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멀찍이 서서 구경하곤 했다.
어디에서나 튀는 아이였다. 어느 동네를 가도 떫게 보였나 보다. 꼭 시비를 거는 자들이 나타났고, 도전 정신이 강한 나는 그 자리를 절대 피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한 번은 나보다 서너 살 위의 형과 싸운 적이 있다. 어른스러운 친구였는데 보스인 척하는 게 못마땅했다.
내가 도전하자 그는 거절했다. 우리는 말 없이 뒷동네 우물가로 갔다. 싸워 보니 몸집 면에서 상대가 안됐다. 싸움은 내 코에서 코피 터지는 걸로 마무리됐다. 전혀 울거나 하지 않고 "그래, 내가 졌다"는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다. 아버지가 나를 복싱 경기장에 데리고 다닌 것도 이런 기질에 끌린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은 누굴 만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아버지와 한창 복싱장을 전전하던 종로구 내수동 시절, 나는 우연히 또 한 명의 멘토를 만나게 됐다. 어느 날 저녁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가 잔뜩 흥분해 평안도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야, 우리 집 들어오다 보면 왼쪽으로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김준호가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어린 내 맘은 그 한마디에 덜컹 흔들렸다. 김준호라면 '바람개비'라는 별명을 가진 당대 최고의 복서가 아닌가. <계속>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