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펼치는 세기의 대결은 그칠 줄 몰랐다. 패터슨이 재대결에서 요한슨을 9회 KO로 이기고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나는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를 볼 때마다 패터슨을 연상하곤 했다. 두 사람의 경기 스타일이 너무도 비슷했다. 패터슨은 타이슨처럼 키가 작고 머리를 잘 흔들었다.
패터슨과 타이슨의 트레이너가 같은 사람이란 사실을 알면 놀랄 일도 아니다. 복싱계의 명조련사 커스 다마토는 이들의 장점을 십분 살린 스타일을 창안해냈다.
어린 나를 감동시킨 건 패터슨의 스포츠맨십이었다. 그는 사투를 벌이다 링 바닥에 쓰러진 요한슨을 일으켜주었다. '저런 게 진정한 스포츠구나'라는 생각이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패터슨은 진정 위대한 복서였다.
이어 세계 복싱은 군웅할거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나는 동네 만화방을 떠돌며 친구들과 함께 복싱 경기를 봤다. 패터슨이 소니 리스턴에게 1회 KO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내놓았고, 얼마 후 무하마드 알리라는 천재복서가 나타나 리스턴을 7회 KO로 꺾어버렸다. 복싱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올 5월 패터슨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한동안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71세의 나이로 뉴욕 자택에서 사망한 그는 무하마드 알리처럼 8년 동안 파킨슨씨 병에 시달렸다.
쇠망치와 같은 주먹을 너무 많이 허용한 탓이었다. 헤비급 펀치는 1t의 펀치가 2m 높이에서 떨어지는 위력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헤비급의 주먹을 연구해 내놓은 수치다.
패터슨이 파킨슨씨 병에 걸린 사실을 약 5년 전 미국에서 알게 됐다. 내 아들이 알리의 딸 레일라 알리와 같은 도장에서 복싱을 배우고 있었다. 패터슨의 근황이 궁금해 레일라 알리의 트레이너인 덥에게 물었다.
"패터슨은 요새 뭐 하는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
"내가 알기로 패터슨은 많이 맞지 않았는데."
"요한슨에게 한 경기 9번 다운 당하지 않았나."
할 말이 없었다. 매에는 장사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맞지 않는 권투를 하려고 노력했다. 은퇴한 선배들이 나이 들어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파킨슨씨 병은 잔매를 많이 맞은 사람들이 걸린다. 권투 장갑이 푹신한 스폰지 구실을 해 머리를 울리게 한다. 오히려 맨 주먹으로 맞으면 파킨슨씨 병에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나라고 파킨슨씨 병이 안 오리라 장담할 수 없다. 1973년 2월 9일 태국 방콕에서 무쇠 펀치를 자랑하는 타농비트 수코타이에게 죽도록 맞고 8회에 겨우 역전 KO시켰다. 그래서 복싱 전문가들은 홍수환 최고의 경기로 '4전5기의 신화'인 카라스키야전보다 수코타이전을 꼽는다.
내가 상대한 자모라·수코타이·카라스키야·박영석 이 네 명은 정말 무지막지한 돌주먹이었다. 이들에겐 졌거나 이겨도 겨우 이겼다. 이들과 다시 경기하라고 하면 지옥에 가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