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에서 길은 시간이란 선물을 주는 대신 여유와 낭만을 앗아간다. 길의 폭이나 속도에 따라 시간과 낭만의 정도는 어김없이 반비례한다. 어디에 무게를 두고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목적지를 향한다면 낭만을 포기하고. 반대의 경우 시간에 등을 돌리면 된다. 길은 대부분 ‘시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뚫렸다. 하지만 ‘자유 여행’을 꿈꾼다면 시간에 관계없이 호젓한 길을 달려보자.
경기 가평군 북쪽을 관통. 북면에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으로 이어지는 75번 국도가 있다. 아직까지 잘알려지지 않은 이 길은 명지산(1267m)·국망봉(1168m)·화악산(1468m)을 끼고 달린다.
여행은 북쪽 화천군 사내면에서 내려오는 것이 편하다. 최근 47번 국도가 화천까지 공사를 끝내 4차선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쉽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포천군 내촌리를 벗어나면 제한속도를 걱정해야 할 만큼 한적하다.
백운계곡으로 이어지는 도평리까지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백운계곡으로 방향을 틀어 일명 캬라멜고개라 불리는 광덕고개를 넘은 후 10여분 달려 오른쪽 주유소를 끼고 우회전하면 75번 국도로 접어든다.
이곳부터 해발 600m의 도마치고개 구간은 몇달 전까지 비포장이었으나 지금은 말끔히 정돈됐다. 이를 아는 이가 드물어 차량 통행은 거의 없다. 고개까지 20여분 달렸지만 지나는 차량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한적한 고갯길을 넘어서면 좌우로 가파르게 솟아오른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단풍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국망봉과 명지산. 왼쪽으로는 화악산이다. 구불구불 작은 길은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진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길은 도망치듯 그 틈을 헤집고 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길을 따라 달리는 명지계곡의 풍경이 눈길을 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어우러진 단풍은 깊어가는 가을을 알린다. 길을 가다 아무곳이나 렌즈를 들이대면 멋진 작품이 만들어진다. 훼손을 염려해 쳐놓은 철조망이 눈에 거슬릴 뿐이다.
명지산 입구를 지나 북면으로 접어드는 도로 주변에는 사과나무 가지에는 탐스러운 사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고개 숙인 벼를 베느라 손길이 바쁜 들녘을 지나 가평읍으로 들어서면 드라이브 여행은 끝난다.
75번 국도에는 ‘용소폭포’가 두 개 있다. 도마치고개에서 조금 아래 오른쪽 국망봉 등산로 입구인 적목리에 하나. 그리고 도대 2리 보건진료소 바로 뒤에 하나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물이 고이는 소(沼)는 나란히 용과 관련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적목리 용소폭포는 이무기가 용이 돼 승천하려다 임신부의 눈에 띄어 그대로 떨어져 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은 여러 갈래로 흘러내리다 한 데 모인 후 꿈틀거리는 용처럼 비틀면서 폭포를 이루며 떨어진다. 바위에 구불구불 새겨진 물길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투명한 옥빛의 소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도대 2리의 용소폭포는 이정표가 없어 찾기가 어렵다. 화악산의 속살로 파고드는 조무락골길을 지나 약 8㎞쯤 가다 오른쪽 보건진료소 뒤에 있다. 약 300m쯤 들어가면 계곡 건너편 바위로 물이 흘러내린다. 한줄기로 흘러내리는 적목리 용소폭포와 달리 물길은 제멋대로다. 양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아래 펼쳐진 소다. 7~8m는 됨직한 수심에 웬만한 수영장의 넓이다. 주민의 말로는 이곳에 살던 용이 적목리 용소폭포를 거쳐 승천하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길에서 이곳까지는 사유지이므로 폭포를 보려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