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이 저물고 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 한 해 역시 독일 월드컵 16강 좌절. 성남의 K리그 우승 등 축구계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영광과 좌절의 드라마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풍성한 결실을 거두고 미소짓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좌절과 시련에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다. 영광과 좌절의 주인공을 통해 2006 한국축구를 정리했다.
▲명
-잡초서 꽃을 피운 김학범
잡초에서 화려한 꽃이 피어났다. 국가대표팀 언저리도 가보지 못한 은행원 출신 K리그 사령탑 김학범(46) 감독이 성남 일화를 2006 삼성 하우젠 K리그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김학범 감독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비결은 끝없는 노력과 공부. 밤을 패가며 상대팀에 대한 비디오 분석으로 맞춤형 전술을 제시해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선수들을 장악했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해외 연수를 다녔고. 틈틈이 학업에 힘쓰며 올해는 체육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학범 감독의 승리는 위대한 보통 사람의 신화였다.
-설기현의 괄목상대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5월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치른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설기현 역주행’이라는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설기현(27)이 공 줄 곳을 찾지 못하며 우리편 진영으로 맹렬히 드리블하는 모습을 담은 질책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후 설기현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딩에 입단했다.
팬들의 힐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설기현은 레딩에서 단숨에 주전 자리를 꿰차며 반 시즌만에 3골 2어시스트라는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골과 어시스트 기록만 놓고 보면 박지성. 이영표를 이미 추월해 버렸다. 지난 2000년 벨기에 프로축구에 진출해 6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이 이제야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대기만성 우성용
대표팀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축구에서 우성용(33)은 빅스타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K리그를 지켜온 진정한 스타는 바로 우성용 같은 선수다.
우성용은 올시즌 K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19골을 작렬하며 성남이 K리그 정상을 밟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K리그 득점왕도 우성용의 자리였다. 지난 1996년 부산에 데뷔한 그는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에 이어 사상 5번째로 통산 100호골(101골)을 돌파했다. 어쩌면 2007년 우성용은 통산 골기록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지도 모른다.
-이동국의 재기
이다지도 불운할 수 있을까. 월드컵 개막을 불과 두 달 앞둔 4월 5일 K리그에서 이동국(29)은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재활에 필요한 시간은 6개월. 당연히 월드컵 출전의 꿈은 또 다시 물거품이 됐다. 지난 2002년 히딩크 감독의 외면으로 월드컵 4강의 신화가 써지는 동안 홀로 방황했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생각보다 강했다. 독일서 성공적으로 재활에 성공했고. 월드컵 기간 중에는 동료를 만나서 격려하는 성숙한 모습도 보였다. 이동국은 10월 국내로 귀국. 11월 5일 복귀골을 터트렸다.
-최진철 기쁨의 눈물
무표정하고 일견 무뚝뚝해 보이기까지한 최진철(35). 그는 11월 9일 전북 현대가 시리아의 알 카라마를 꺾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두자 그라운드에 엎드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전북에 입단한 최진철은 “한 팀에서 11년 동안 있었는데 변변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라며 “후배들이 너무도 고맙다”고 감격을 전했다.
전북 현대는 상하이 선화와의 조별리그 마지막경기. 상하이 선화와의 8강전. 울산 현대와의 4강전서 잇달아 역전승을 거두며 기적처럼 아시아 정상까지 등극했다. 주장 최진철은 MVP를 수상했다.
▲암
-차경복 전 성남감독 별세
1984 LA올림픽 축구결승전 부심을 맡으며 최고의 포청천으로 이름을 떨쳤고 성남 일화 감독으로 정규리그 3연패를 이룬 명장 차경복 감독이 10월 31일 향년 6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차감독은 지난 5월 루게릭병으로 의식을 잃은 후 투병해왔다. 고인은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심판·상벌위원장을 거치는 등 축구 행정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먹튀’아드보카트와 불안한 새감독 베어벡
2006년 독일 월드컵서 한국은 1승1무1패(승점 4점)를 거뒀다. 역대 최고 성적이었지만 월드컵 16강의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실패다.
아드보카트(59) 감독은 월드컵 후 러시아 프로클럽 상페테르부르크 제니트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러시아행 루머를 완강히 부인하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월드컵 탈락후 돌아온 인천공항에서 러시아행을 공식 천명했다. ‘먹튀’라는 비난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후임으로 사령탑에 오른 베어벡(50) 감독은 아시안게임서 잇달아 졸전을 펼치며 아직 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영표 이적 파동과 벤치 신세
이영표(29·토트넘)가 AS 로마 이적을 막판에 뒤집었다. 양 측 구단이 세부 조건까지 합의를 끝낸 상태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로마행을 거절했다.
꼭 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후 이영표는 에코토. 심봉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영표는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이영표에게는 혹독한 시련을 안겨준 한 해였다. 지난 1월에는 부친상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50억 연봉 박지성의 시련
좋은 일은 나쁜 일과 함께 온다. 지난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올해 한국 축구선수로는 처음으로 연봉 50억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 시즌 맨유로부터 연봉 200만파운드(36억원)을 받았던 그는 2010년까지 계약기간을 늘리며 40%가 늘어난 280만파운드(51억4000만원)에 재계약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에이전트를 옮기는 과정에서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또 고질적인 발목 부상의 재발로 프리미어리그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재활로 시즌 전반을 보내야 했다.
-갈 곳 없는 안정환
천하의 안정환(30)이 소속팀을 못찾았다.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빅리그 진출을 노렸던 안정환은 스코틀랜드 하츠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국내 몇 몇 구단서도 관심을 보였지만 안정환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은 외롭고 쓸쓸하다. 베어벡 감독은 “소속팀 없는 선수를 대표로 쓸 수 없다”라며 그를 대표팀서 제외시켰다. 선수가 팀을 떠나면 기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 2007년 안정환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지 주목된다.
이해준 기자 [hjlee@ilgan.co.kr]
IS 선정 올해의 한국축구 10대 뉴스
① 성남 일화 북두 칠성을 달다 1993·94·95년. 2001·2002·2003년이어 7번째 정상
② 전북 현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아시아 최정상 등극… AFC 올해의 클럽 선정
③ 박지성 연봉 50억 시대 개막 40%인상… 퍼거슨 “2010년까지 지성과 함께 하게돼 기쁘다”
④ 2006독일월드컵 16강 탈락 1승1무1패… 원정지서 열린 월드컵서 첫 승 거둔게 그나마 성과
⑤ 베어벡호 출범 ‘출발부터 삐그덕’ 2년 임기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갈 수 있을지 벌써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