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사고가 나면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고. 반대로 사고를 내지 않아도 보험료는 오르기만 한다. 운전자는 선택권이 없다. ‘영원한 봉’인 셈이다. 횡포에 가까운 보험사의 ‘일방적인 독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고 당하면 ‘나’만 손해
경기 의정부에 사는 김정길(35·회사원)씨는 지난해 말 출근 도중 차량 사고를 당했다. 골목길을 지나던 중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에 받혀 차량 왼쪽 앞부분이 크게 부서졌다. 펜더를 비롯해 범퍼·후드 등이 망가졌고. 내부적으로는 엔진룸 지지대와 앞바퀴를 지지해주는 하우스 등이 제 모습을 잃었다.
김씨는 수리 기간 동안 보험회사에서 내준 렌터카를 이용했고. 사고 차량은 3일 만에 돌아왔다. 김씨의 차량은 배기량 2000㏄급의 2003년식 중형차. 500만원이 넘는 수리 비용은 모두 보험으로 처리했지만 찜찜한 마음에 이 차량을 계속 운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결국 고민 끝에 차를 팔기로 하고 중고차 시장을 찾았다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1000만원은 받을 수 있었던 차량 가격이 70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사고 차량의 시세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김씨는 무려 30% 이상 손해를 감수한 채 차량을 넘기고 말았다.
현재 사고가 났을 경우 보험사에서는 차량 수리비·대차료(렌트비용). 부상 치료비. 그리고 사후보상금 만을 지급한다. 사고 차량에 대한 감가상각 비용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한 중고차매매업자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차량 시세는 파손 부분에 따라 3%에서 최고 50%까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업자에 따르면 문·범퍼·펜더 손상 등 가벼운 ‘상처’의 경우 3~5%. 추돌사고에 따른 본네트와 엔진 지지대. 뒷부분 트렁크 아랫부분인 백판넬 등이 망가지면 20% 이상 가격이 떨어진다.
여기에 바퀴를 지지해주는 하우스까지 이상이 생기면 30% 이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엔진이 망가지는 등 심하게 파손됐을 때에는 수리를 마쳐도 50% 이상 받기 어렵다.
현재 사고 차량의 감가상각 부분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는 까닭에 운전자가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고를 내지 않는 것뿐이다.
●고삐 풀린 자동차 보험료
이처럼 자동차 사고 보상에 대해서는 인색한 보험사들이 지난해 두 차례 올랐던 보험료를 이달부터 3월 초까지 또 인상한다. 대형사는 5~6%. 중소형보험사는 4.8~7.5% 수준에서 전 차종을 대상으로 올릴 예정이다. 무사고 운전자라 하더라도 보험료율이 떨어지는 대신 보험료는 예외없이 지난해보다 10~25% 더 부담하게 됐다.
보험사들은 72~75%인 손해율이 지난해 11월 83%를 넘어설 만큼 한계에 이르러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거세다. 사고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고 가짜 환자에 대한 조사도 허술한 것이 손해율 인상의 원인이란 주장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후보상금 제도가 손해율을 높이는 원인이란 지적이다. 사후보상금이란 사고 후유증 등으로 인한 합의금 형식으로 보험사에서 지급하는 돈이다.
게다가 일부 손보사는 사고를 낼 확률이 적은 장기 무사고 운전자를 기피하는 행태를 보여 눈총을 받고 있다. 초보운전자나 사고 확률이 높은 운전자 등 보험료와 할증료를 더 많이 챙길 수 있는 고객만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적극 장려해 보험금 지급을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얄팍한 상술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보험료 인상은 확정됐고. 그만큼 소비자의 부담만 늘어나게 됐다.
현재 자동차보험 약관에는 사고 차량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다. 무사고 운전만이 최고의 보상이라는 서글픈 현실에서 운전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