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는 봄을 알리려는 전령들의 뜀박질로 시끌벅적하다.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전남 구례와 광양은 매화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에 한창이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먼저 매화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조금 뒤 산수유가 앙징맞은 노란색 꽃을 선보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뒤죽박죽이다. 예년에 비해 높아진 기온 탓이다. 성급한 놈은 활짝 꽃을 피워냈고. 대부분 서로 먼저 얼굴을 내밀려는 듯 꽃망울은 잔뜩 부풀어 있다.
▨노란 산수유. 그리고 골리수
“아마 열흘 후면 활짝 피겄소.” 겨우내 머나먼 여행 끝에 남녘으로 상륙한 봄은 구례를 찾아 산수유 나무를 흔들기 시작한다. 나무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노란 꽃망울로 반가움을 표시한다.
엄지 손톱만한 노란색 산수유꽃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크기는 작지만 한 그루에 수십만 송이를 달아 놓아 만개했을 때 펼쳐지는 노란 물결은 그 어느 것도 따라오지 못할 장관을 이룬다.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는 산수유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계곡을 따라 수백 그루의 산수유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지금은 노란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성급한 놈은 벌써 꽃을 피웠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산수유에 대해 이렇게 빨리 꽃이 피는 것은 처음이라는 표정이다. 무려 보름 가까이 개화 시기가 당겨진 것이다. 이번 주말이면 산수유는 마을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개화의 ‘질서 파괴’로 인해 바빠진 쪽은 사람이다. 매년 3월 말 산수유 축제를 벌여온 구례군은 올 해 시기를 두 번이나 당긴 끝에 3월 15일로 정했다. 예년에 비해 2주나 앞당겼다.
구례에서는 또 ‘신비의 물’이라 불리는 고로쇠 약수 채취가 한창이다. 고로쇠 나무는 2월 입춘이 지나면 소리 없이 봄맞이를 시작한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뿌리에서 빨아들인 물을 가지 끝까지 밀어 올리느라 여념이 없다.
줄기는 온통 물로 채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줄기에 상처를 내 뽑아낸 물이 고로쇠 약수다. 땅의 정기를 흠뻑 빨아들인 고로쇠 약수는 ‘콸콸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양이 어마어마하다. 많을 때는 한 그루에서 10ℓ나 받아낼 정도다.
뼈에 이롭다는 뜻의 골리수에서 유래된 고로쇠 약수는 필수 미네랄 성분이 일반 물의 40배가량 함유돼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엄사 바로 뒤 구층암에 가면 명완스님이 내주는 고로쇠 약수를 맛볼 수 있다. 암자 부근 고로쇠나무에서 추출한 약수는 스님이 물 대신 마시는 음용수다. 가끔 손님이 오면 한두 잔씩 내주곤 한다.
구층암은 또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암자를 중건하면서 마당에 자라던 매화나무를 잘라 기둥으로 세웠는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이색적다. 400년 이상 된 국내 고건축물 가운데 나무 상태를 그대로 이용한 자연 기둥은 이 암자뿐이라고 한다.
그 아래 지리산한화리조트에서는 고로쇠 약수를 대량으로 마실 수 있다. 지리산에서 나는 산채무침 또는 멸치·마른 오징어 등을 곁들여 마시면 몇 리터도 너끈하다. 약수는 피아골 깊숙한 계곡에서 채취한다. 산지에서는 18ℓ 한 통에 5만 5000원이며. 택배(택배비 5000원)도 가능하다. 061-782-2172.
●섬진강의 보석 ‘매화’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한쪽은 전남 광양. 다른 한쪽은 경남 하동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곳곳에 예쁜 모래톱을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양편에 늘어선 벚나무는 4월이면 강을 온통 흰색으로 뒤바꿔 놓는다.
지금은 하얀 매화가 수줍은 듯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눈 사이에서 꽃을 피워내 예로부터 굳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구례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화개에서 남도대교를 건너 광양으로 가다 보면 도사리 섬진마을과 다사마을을 만난다. 섬진강변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는 곳이다. 이중 섬진마을은 온통 매화나무로 뒤덮여 매화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그 한가운데에는 매화 명인 홍쌍리(67)씨가 수십년 동안 가꿔온 청매실농원(www.maesil.co.kr)이 있다. 능선을 따라 10만여 그루의 매화가 자라고 있는데. 입구부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직 본격 개화 시기는 되지 않았지만 입구를 들어서면 은은한 매화 향기가 코 끝을 자극한다. 능선의 매화는 분홍색의 꽃망울만 매단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홍씨는 “올해 개화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다. 평년에 비해 열흘 정도 빠른 것 같다”고 설명한다.이에 맞춰 청매실농원은 매년 3월 중순 개최해 온 매화축제 시기를 3월 초로 바꿨다. 축제는 1일부터 꽃이 질 때까지 계속된다. 061-772-4066.
△가는 길=봄맞이 여행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것이 더 재미있다. 조금씩 강렬해지는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다. 88고속도로 남원IC에서 나와 19번 국도를 이용하면 구례로 연결된다. 밤재터널을 지나 내리막길이 끝날 무렵 좌회전. 지리산 온천 단지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 산수유가 가득한 산동면 위안리에 닿는다. 19번 국도를 따라 광양에 이르는 길은 벚꽃으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다. 구례에서 약 30분 달리면 광양 매화마을에 닿는다.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다음달 3일부터 매주 수·토·일요일 당일 일정으로 구례 산수유마을. 화개장터. 청매실농원 매화축제를 돌아보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오전 7시 출발. 2만 9000원. 또 거제 해금강. 외도. 통영 소매물도 등 바다 섬여행을 떠나는 무박 2일 프로그램도 내놓았다. 7만 9000원. 02-733-08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