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을지로 다동. 폭 1m를 간신히 넘는 좁다란 골목 사이로 간판이 빼곡하다. 골목 안으로 들어갈수록 진가가 드러난다. 즐비한 간판 위에 가게 이름보다 더 크게 써 놓은 ‘25년’‘30년’의 숫자는 바로 가게의 연식이다.
작고 낡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연륜만큼 맛도 깊이가 있다. 몇 십 년씩 한자리를 지키며 인근의 시청을 비롯하여 삼성·LG·코오롱 등 대기업 직장인들의 입맛을 잡아 왔으니 오죽하랴.
점심 시간과 퇴근 후 몇몇 집은 4~5m씩 줄을 서서 먹는 것은 수십 년 전의 풍경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점심 고객의 80% 이상이 직장인이다 보니 음식을 최대한 빨리 내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대 음식점들은 대부분 주문 후 5분 이내에 수저를 들 수 있다.
이 골목 안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남포면옥을 꼽을 수 있다.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꼬인 속이 확 풀어지는 시원한 육수가 매력인 평양냉면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에 20여 개 장독대가 바닥에 묻혀 있다. 이것이 바로 남포면옥의 보물이다.
정작 제조법이래야 무·소금·파 정도가 전부이고. 매일 담근 물김치를 이 독에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그대로 묵혀 시큼한 동치미로 완성시키는데 맛의 비법이 담겨 있다. 숙성된 동치미 국물을 양지머리 육수와 섞어 내는데 그 조합이 상큼하고 개운하다.40여 년 동안 과도한 회식 후의 쓰린 속을 달래 주는 직장인들의 벗 무교동 터줏골. 오로지 북어국만 내온다. 유난히 걸쭉하고 뽀얀 국물이 남다르다.
이유는 바로 사골국물에 있다. 11시간 이상 푹 고아 만든 사골국물은 멥쌀을 갈아 넣어 기름기를 쏙 뺐다. 진한 맛에 속까지 든든한 보양식이다. 북어는 강원도 고성의 것을 쓴다. 1년간 바닷바람을 맞고 건조된 자연산이다.
곰국시집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 중 하나. 두 명이 함께 찾는다면 전골 국수를 추천한다. 곰 국물에 쑥·파·호박·버섯을 넣은 냄비를 손님 앞에 내놓는데 한소끔 끓고 나면 양념은 취향에 맞게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어 준다. 조리 과정을 보여 줘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음식에 신뢰가 간다.
홍콩식 요리를 선보이는 초류향도 인기다. 산둥 출신의 주인은 홍콩 유학 시절 배운 조리법으로 우리 입에 맞춘 각종 홍콩식 요리를 선보인다. 늘 손님의 입맛이 질리지 않도록 스페셜 요리를 개발하는 주인의 노력에선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특히 자금성을 모티브로 했다는 입구의 긴 복도는 ‘중국요릿집’다운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맥주 한잔을 걸치고 싶다면 태성골뱅이신사도 좋다. 무교동에는 이상하게 골뱅이 안주를 내는 집이 많은데 대부분 재료는 비슷비슷하다. 30여 년의 역사처럼 태성골뱅이신사는 구멍가게부터 시작됐다. 가게를 찾는 손님에게 병맥주와 함께 팔던 골뱅이 안주가 이제는 중심이 된 셈. 특히 다른 야채는 넣지 않고 오로지 파·골뱅이·대구포로 승부한다.
높다란 빌딩 숲에 둘러싸여 수십 년의 전통을 이어가는 다동 먹자골목. 매일 먹어도 물릴 것 같지 않은 소박한 맛이 오늘도 넥타이 부대를 끌어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