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비지니스 접대의 대명사는 골프장이었다. 비지니스 파트너와 함께 서너시간 함께 필드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며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골프 접대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꼭두 새벽에 두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지친 몸을 이끌고 두시간 정도 자동차로 달려,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서 너시간 필드를 돈 후, 사우나서 땀을 씻어내고, 반주를 곁들여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집으로 달려오면 휴일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골프장서 돌아와 낮잠을 자고 나면 가족들과는 저녁 식사 조차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주일 내내 가장과 함께 하는 주말을 기대했던 가족들의 눈길이 고울 리 없다.
축구장 스카이박스 접대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비지니스 파트너에 대한 접대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프로그램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는 12인실 31개, 22인실 2개, 29인실 4개 등 모두 37개의 스카이박스가 있다. 전체 정원은 모두 532명. 6만을 수용하는 서울월드컵 경기장의 1%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 8일 서울-수원전이 열린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아디다스 코리아 마케팅팀의 이은석(42) 차장은 모처럼 가족들 앞에서 위신이 섰다. 회사에서 제공한 직원 사기 진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가족과 함께 축구장 나들이에 나섰다.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자가용을 몰고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한 이 차장은 경기장 가까이에 마련된 VIP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용 출구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이용, 스카이박스가 있는 4층으로 올라왔다.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의 안내로 방에 들어서자, 마치 호텔 레스토랑처럼 라운드 테이블이 세팅돼 있다. 한 쪽 옆에는 뷔페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고, 통유리 너머로는 녹색 그라운드와 넘실대는 관중들이 한눈에 쏟아져 들어온다.
금강산도 식후경. 어린 아이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타이 스타일 새우 샐러드·비프스튜·바비큐 치킨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있다.
5성급 호텔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출장 뷔페팀의 솜씨로 한 끼 식사로 거뜬한 양이다.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오렌지쥬스 등 음료는 기본, 입장 인원에 따라 맥주가 주어지며 칠레산 와인 두 병도 제공된다.
탁 트인 공간에서 봐야 제 맛이지, 유리창 안에서 무슨 재미냐고? 천만에 말씀이다.
베란다처럼 통유리창 앞에 야외 좌석이 마련돼 있어 킥오프 휘슬이 울리면 관중과 함께 호흡을 나누며 경기에 몰입할 수 있다. 비가 내리거나, 춥거나, 더울 경우 다시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방안으로 들어오면 된다. 어린 아기와 함께 가더라도 안락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이 차장의 부인 김미옥(37)씨는 "스카이박스에는 두번째 와봤다.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관람하기가 편하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서울과 용품 스폰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스카이박스를 구매하게 됐다. 주로 비지니스 파트너와 동행하지만 회사 직원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도 한다. 안팎으로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는 1개실을 더 구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C 제일은행도 지난해 1개실을 사용한 뒤 설문조사를 통해 반응을 조사한 뒤 올해는 12인실과 22인실을 각각 하나씩 모두 2개실을 사용하고 있다. 제일은행 홍보팀 박효진씨는 "골프 행사의 대상 고객은 CEO 등 고위 직군에 국한 될 수 있다. 하지만 스카이박스에는 실무진들을 다양하게 초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고객이 아니라, 고객의 가족을 우리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축구장 접대는 골프 접대에 비해 한 차원 더 효과가 높다고 볼 수도 있다.
주말 경기에는 이용자들이 가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중 경기 때는 스카이박스가 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2~3시간 전에 스카이박스에 도착해 간단한 회의를 한 뒤 함께 회식을 겸해 음식을 나누며 경기를 관전하는 방식이다.
근무지가 흩어져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대기업 임원진이나, 여러 회사가 함께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회의 장소로 적격이다.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고 음식까지 제공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텔 비지니스 센터에서 회의를 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축구협회는 스카이박스에서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이 가능하도록, 테이블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룸에 설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축구협회 사업국 김세인씨는 "외국계 회사에서 간단한 회의를 진행한 뒤 경기를 즐기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7월 20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 서울의 빅매치가 열린다. 축구 종가의 명문팀과 한국을 대표하는 수도 서울의 팀이 격돌한다는 점에서 외국인 직원과 한국인 직원의 융화,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접대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해준 기자 [hjlee@ilgan.co.kr]
●스카이박스 가격 ------------------------------------------ 구분 FC 서울 대한축구협회 -------------------------------------------- 12인실 18경기 2200만원 1경기 500만원 18경기 1500만원 1경기 300만원 22인실 18경기 3000만원 1경기 700만원 29인실 1경기 300만원 1경기 800만원 --------------------------------------------- *FC서울 경기 22인실 기준 1인당 비용=7만5750원 *대표팀 경기 22인실 기준 1인당 비용=31만8181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