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씨가 고흐의 작품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을 집안 정리를 하다가 발견, 감정에 나선 것은 3년 10개월 전인 2003년 9월. 왜 4년가까이 흐른 이 시점에 소장 여부가 공개됐을까? 서씨의 증언을 빌려 숨 막혔던 그 과정을 되돌아본다.
국내에서 감정이 사실상 불가능, 고흐 연구에 관한 한 세계 수준에 오른 일본을 통해 고흐의 고국인 네덜란드에 감정을 의뢰한 뒤 겪은 갖은 우여곡절에서 비롯된 심리적 불안감이 그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흐의 진품임을 알아 본 일본 측이 어떻게든 이 그림을 자기 나라에 남겨 놓으려고 시도, 그 공작을 뚫고 한국으로 다시 가져오려는 필사의 노력이 있었다.
처음 도교의 고흐 전문가 2명와 감정 절차를 상의, 일본 제일의 미술품 전문 사진 기사에게 특수 필름(텅스텐)으로 국제 규격에 맞게 촬영,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에 감정을 요청했다. 두 달 뒤 비공식적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일본 측 대리인이 고흐미술관 측과 맺은 작품 운송협정서를 서씨에게 고의로 전하지 않아 계약 기간을 허송케 한 것을 비롯 ▲액자를 뜯고 본 결과 그동안 유화로 알려진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이 템페라(수채화) 같다며 감정 절차를 중지하자고 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부딪히며 시간이 흘렀다.
2004년 6월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본 방송계·문화계 관계자들에게 작품을 공개, "오히려 수채화가 맞는 듯하다"는 평가와 함께 도쿄 긴자 화랑가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품 보관에 顟작전'이 필요했다. 탈취 분위기를 감지, 후쿠오카→도쿄→오사카를 거치며 간신히 한국으로 다시 갖고 들어올 수 있었다. 서씨는 이 과정에서 "도쿄에서는 승용차를 에워싸고 협박했고, 후쿠오카에서는 칼로 위협까지 당했다"라고 말한다.
이 그림의 기구한 운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서씨는 한국에 온 뒤에도 일본의 집요한 추적에 불안을 느껴 독일에 있는 지인에게 1년여 동안 맡김으로써 이 그림은 또다시 해외에서 유랑의 길을 걸어야 했다.
최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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