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선수단이 전 소속 선수였던 마이클 쿨바를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2003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마이클 쿨바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마이너리그 그라운드에서 경기 도중 사망하자 미국 야구계가 슬픔에 젖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가 용병을 도입한 첫해인 1998년 현대의 4번타자를 맡아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스캇 쿨바의 동생이다. 형제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 야구로 진출했었다.
마이클 쿨바는 지난 4일 콜로라로 로키스의 더블A 팀인 툴사 드릴러스의 타격 코치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한달도 채 안돼 23일 아칸소 트래블러스와 경기에 1루 베이스코치로 나섰다가 9회 소속팀 선수인 티노 산체스의 파울 직선 타구에 머리를 맞고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후의 이야기들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쿨바는 결혼 7년째인 아내 아만다(32)와의 사이에 두 아들 조셉(5)과 제이콥(3)을 두고 있으며 10월에 셋째가 태어날 예정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만다에 의하면 쿨바가 다시 야구를 시작한 이유도 직장의 문제 보다는 두 아들 때문이다.
그녀는 "두 아들이 아버지가 야구장에 있는 모습을 너무도 보고 싶어했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 생계의 문제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만다는 "남편은 항상 만약 자기가 로토(lotto)에 당첨되면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덧붙혔다.
1990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에 16라운드에 지명된 마이클 쿨바는 무려 10년 동안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천신만고 끝에 2001년 밀워키에서 빅리그에 데뷔했다.
밀워키에서 2홈런에 타율 2할에 그친 그는 2002년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했으나 5게임에서 12타수 1안타를 기록하고는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멀어졌다.
밀워키와 세인트루이스에서 통산 44게임 밖에 출장하지 못하고 다음 해에 한국 야구의 용병이 된 것이다. 두산에서도 2003년 2할1푼5리에 10홈런을 기록한 후 퇴출됐다.
그러나 무명의 메이저리거 출신 마이너리그 코치에 대한 애도의 물결은 감동적이었다. 버드 셀릭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비극적인 사고의 다음 날인 24일 "마이클 쿨바는 야구 가족에서 태어나 야구 가족의 일원이 됐다"는 추모 성명을 발표했다.
소속팀 툴사 드릴러스는 24일 열릴 예정이었던 위치타 전을 연기했으며 이날 미 전역의 마이너리그 구장에 그를 추모하는 조기가 일제히 게양됐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샌디에이고전에 앞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마이클 쿨바가 겨우 5게임 밖에 출장하지 못했던 세인트루이스 구단도 유족에게 위로의 서한을 보낸 뒤 대변인을 통해 "항상 존중받았던 고인은 우리 카디널스 가족의 일원이다.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인트루이스는 25일 시카고 컵스전에 앞서 추모 행사를 열었다.
로스앤젤레스=장윤호 특파원 [changyh@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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