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북카페] 베네치아 수녀들이 방탕한 까닭은?
셰익스피어가 희곡 '베네치아의 상인'과 '오셀로'를 통해 정치·상업적으로 흥성한 도시로 그린 베네치아는 물 위의 도시다. 바이런도 동료 시인 토마스 무어에게 "가장 푸르른 상상의 섬"이라고 묘사했다.
이 도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 세워졌다. 피란민들은 피와 땀으로 운하를 만들고 물 위에 건물을 지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 가장 강대한 공화국이었던 이곳에서는 곤돌라 경주·권투·카니발 등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 즐길 거리가 많았다.
카니발에서는 모든 행사에 마스크를 썼고 수녀들이 요란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결혼 지참금을 감당하지 못해 억지 수녀가 된 귀족 출신 딸들은 머리를 세련되게 꾸미고, 팔이 드러난 옷을 입었다. 꽃으로 몸을 장식했고, 장갑과 보석을 착용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 수녀들은 쇠창살 문 뒤의 그들의 화려한 응접실에 손님을 맞아들이곤 했다."
베네치아 출신 아버지와 시실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란체스코 다 모스토가 쓴 '프란체스코의 베네치아'(존 파커 사진·권오열 옮김·루비박스·3만 5000원)는 알면서도 모르는 베네치아 이야기다.
실제로 베네치아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인 다 모스토 가의 후손이기도 한 그가 풀어 내는 이 도시의 초상은 존 파커의 사진을 만나 더욱 생명력이 불어넣어졌다.
이 책에는 물 위의 오래된 건물들, 곤돌라 뱃사공의 우렁찬 목소리,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좋은 거실이라고 말했다는 지붕 없는 대리석의 거실인 산 마르코 광장, 울퉁불퉁한 돌이 깔린 미로 같은 골목길 등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매년 1500만 명이 찾는 세계적 관광지인 베네치아 어느 골목 어귀에서 느닷없이 만나는 르네상스 모습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흑소소설
미스터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유머 소설. 13편의 단편소설 속에는 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탁월한 소설을 써낸 작가보다 예쁜 얼굴의 평범한 여자 작가에 주목하는 편집자 등 개인의 불행이 맞닿아 있는 세상에 대한 등골 서늘해지는 통렬한 풍자가 스며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바움. 9500원
●신명으로 세상을 두드리다
국내 최초로 '사물놀이'를 창시한 글로벌 광대 김덕수가 책을 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조치원 장터에서 남사당 공연의 새미(무등놀이 맨꼭대기에 선 꼬마)로 첫 데뷔했던 그는 50년 간 미국·일본·캐나다·영국 등 전 세계를 유람하며 6500회의 공연 기록을 세웠다. 김덕수 지음. 김영사. 1만 2000원.
●'문학의 문학' 창간호
새로운 계간 문학지 '문학의 문학'이 지난 5일 창간됐다. 시인 이근배가 주간을 맡았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소설가 박완서·이호철, 시인 신경림·황동규, 평론가 유종호·김윤식이 편집 자문으로 참여했다. 창간 특집으로 작가 황석영을 다뤘고, 투병 중인 이청준의 단편도 실렸다. 동화출판사. 1만 2000원.
박명기 기자 [mkpark@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