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게'는 전라도 사투리로 '매우'·'많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폭발물 처리 작업은 겁나는 작업이다. 불발탄·유기탄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한순간 방심하면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태호 준위(44)는 이 일을 '겁나게' 좋아한다. "겉으론 멋있게 보이지만 실제론 무척 힘든 일"이라고 고백하면서도 폭발물 처리 작업 이외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락없이 천직이다.
글 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사진 이영목 기자 [ymlee@ilgan.co.kr]
■4000종의 탄약을 주무르다
"공주의 한 낚시터 근처에서 수류탄이 발견됐습니다." 이 준위는 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한다. 새까만 폭발물 처리반 전용 차량이 사이렌을 울리고 현장에 도착한다. 곧바로 주변 안전 조치를 취한다.
"이건 6·25때 사용하던 건데요."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제작 시기와 종류를 알아맞힌다. 4000여 종의 탄약이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리 반원인 이해문 일병은 "현장에 처음 갔을 때 이 준위께서 탄약을 단번에 알아보는 게 신기했었다"라고 말한다. 신관을 제거하고 회수한 후 부대로 돌아와 마지막 처리 작업을 거치면 탄약의 일생은 끝나게 된다.
■탄약이 있어 행복하다
폭발물 처리반에 배치된 지 약 7개월이 된 김창현 일병은 "화학 분석 기능사 자격이 있어 지원하게 됐지만 역시 위험한 일이다 보니 긴장이 됩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김태수 일병도 "부모님이 걱정이 많다"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베테랑 이 준위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준위의 경우엔 어땠을까? 이 준위는 1983년 처음 폭발물 처리반에 배치됐을 때조차 두려움보다는 기쁨이 컸다고 한다. "제 눈엔 마냥 멋있어 보였습니다." 항상 위험 속에서 잦은 부상을 당하지만 그에게 일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영화같이 터지는 폭탄은 없다
하지만 94년 악몽 같은 일이 발생했다. 폭발물이 발견된 장소로 이동 중 지뢰를 밟은 것이다. "밟은 줄 전혀 모르셨나요? 처리 기술이 있으니 밟은 상태에서 제거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자의 질문에 이 준위는 박장대소다. "영화를 많이 보셨군요. 지뢰는 밟는 즉시 터집니다. 영화 속에서는 극적 상황을 위해 과장되게 표현한 것입니다."
M14 대인지뢰, 흔히 발목지뢰라고 하는 것을 밟는 순간 "팡" 소리가 났다. 발밑에서 화염이 피어 오르고 머리에 이어 발에 통증이 전해졌다. 넘어지면서도 순간적으로 지뢰밭을 피하기 위해 다른 한 발로 뛰어올라 도로 쪽으로 몸을 날렸다. 천만다행으로 발목이 잘리는 부상은 면했지만 1개월의 치료와 3개월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에게는 "축구하다 다쳤다"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결국 두 발 모두 깁스한 상태를 들켜 변명을 하느라 혼쭐이 났다고 한다.
■언제까지나 탄약과 함께하다
사고가 난 후 주위에서 "주특기를 바꾸라"고 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배운 게 이거고 좋아서 한 일이다 보니 전혀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더 열심히 이 일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했죠." 한 달 후 목발을 짚고 다시 사고 장소로 출동하게 됐을 땐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때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폭발물 처리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정말 일편단심이다. 불발탄임을 확인하고 차량에 싣고 오다가 터지기도 하는 등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지만 그의 마음은 변함없다. "차량으로 이동하다가도 제 눈엔 유기탄이 보입니다"라고 할 정도니 더 이상 설명해서 무엇하겠는가?
"제가 일을 그만두기 전에 탄약을 보면 누구나 바로 알 수 있도록 상세한 책자를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이 준위. "25년을 근무했지만 아직도 어린애"라고 표현하는 그의 마음 속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사고를 방지하는 임무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탄약지원사령부는?
완벽한 전군 탄약 지원 태세를 확립하는 것을 주임무로 한다. 탄약 보급·검사·정비 업무는 물론 탄약 및 폭발물 저장 관리, 폭발물 처리를 담당한다.
부대 마크 중 월계관은 자유와 평화의 수호, 삼각은 특과 병과, 활은 고대의 병기로서 오늘날의 총포, 화살은 오늘날의 탄약, 축화통은 용감하고 맹렬한 기운을 상징한다.
■폭발물 처리반은?
작전 지역·시설 부대·민간 지역에서 발생, 신고된 불발 및 유기 탄약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사제 폭발물 처리 능력을 보유하여 경찰이나 기타 기관으로부터 요청시 기술 지원에 나선다. 또 국가 중요 시설물의 폭파 위험으로부터 보호 요청 시 기술 지원도 담당한다.
■폭발물 처리 휘장의 종류
▲기본장: 종합군수학교 폭발물 처리 기본 교육 4주 이상을 이수한 자.
▲숙련장: 폭발물 처리 교육 이수 후 폭발물 처리 직책에서 5년 이상 임무 수행 경력자.
▲완전 숙달장: 폭발물 처리 교육 이수 후 폭발물 처리 직책에서 15년 이상 임무 수행 경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