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군대 국가’다. 남자라면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하고. 그렇게 해서 생긴 군대 이야기가 전 국민의 스토리가 된다. 그래서인지 밀리터리 서바이벌 동호회도 수백 군데에 이른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밀리터리 서바이벌은 한겨울 추위를 날려버릴 ‘뜨거운 레저’로 각광받고 있다.
“무브. 무브 ” “고. 고 ”
휘영청 보름달이 세상을 밝힌 지난 25일 0시. 경기 포천시 대진대 예술대학 옆 공사장 현장. 이곳에서는 리들리 스콧의 리얼리즘 전쟁영화 ‘블랙호크다운’에서 미군 특수부대원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장면이 재연되고 있다.
밀리터리서바이벌 동호회 ‘북벌’팀과 ‘KⅡ’팀이 맞붙은 것이다. KⅡ팀 7~8명의 대원이 진격을 시작한 지 몇분 뒤. 마른 수풀 속에서 콩 볶는 소리가 한밤의 정적을 깨운다. “투두두두” “타다다다.” 양 진영에서 내뿜는 모의 전동총의 연발 사격 소리가 산 속 캠퍼스에 요란하게 울려퍼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사” “전사”. 비비탄에 맞아 전사한 대원들의 아쉬운 자백이 이어진다.
밀리터리 서바이벌은 실제 전투에 대한 오마주(존경)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복장과 무기를 최대한 실전에 가깝에 준비한다. 특히 전투 복장은 코스튬 플레이(옛날 그대로의 옷을 입혀 상연하는 극)에 가깝다.
이날 게임에 참여한 최윤석(27·회사원)씨는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배우들과 같은 1993년 소말리아 유엔 평화유지군을 그대로 흉내냈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 ‘필’을 받아 용돈을 아끼고 아껴 하나 하나 장만한 것”이라고 한다.
서바이벌 경력 20년의 이강진(41·자영업)씨는 미국경찰특수기동대(SWAT)·네이비실·한국공수부대 복장 등을 갖추고 게임 때마다 새로운 콘셉트로 변신하기도 한다. 기자도 동호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 복장을 갖춰 입었다.
미군이 신는 매그넘 군화부터 시작해 빛바랜 청색 상하의 군복. 전투모와 방탄 조끼를 갖춰 입고 권총·탄창띠·무릎보호대·팔목보호대 등 갖가지 액세서리와 고글까지 착용하고 나니 왠지 미군이 된 기분이다. 옷을 제대로 갈아 입으니 한밤중 ‘달밤 체조’에 얼른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아오른다.
게임은 양편 각각 10여 명의 대원으로 팀을 구성한 뒤 한쪽이 진지를 방어하고 다른 한쪽은 이를 빼앗는 방식이다. 마지막까지 생존자가 남아 있는 팀이 승리하게 된다. 인원 구성도 특수부대를 연상시킨다. 대개 팀에는 리더와 돌격대원이 있으며. 저격수를 한 명씩 둔다. 이날 KⅡ팀의 저격수로 나온 박종현(24·학생)씨는 치렁치렁한 길리슈트(위장을 위해 몸에 둘러쓰는 장비)에 스나이퍼용 모의 총을 들고 나왔다.
밀리터리 서바이벌은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대부분 20~30대 남성들이다. 실제 이날 게임을 참여한 북벌 팀에는 3명의 현역 직업 군인이 뛰고 있었다. 지겨운 군대에서 일과를 마친 지 얼마나 됐다고.
왜 또 총싸움을 즐기는 것일까? 이현석(31) 중사는 “남자라면 총싸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하며 “현역 군인으로서 실제로 전술훈련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밀리터리 서바이벌에 빠져드는 것일까.
“사방으로 포위 당했을 때 배후를 쳐서 상대를 모두 무찔렀을 때 가장 스릴 있다.”(이현석·북벌팀)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수풀 속에 매복한 채 다가오는 상대방의 발 소리를 주시하고 있을 때. 그런 게 매력이다.”(정대망·27·KⅡ팀)
“낮은 포복으로 박박 기어다니면서 땀 흘리다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이강진·북벌팀)
이날 게임은 야간 시가전. 공사장의 지형 지물을 잘 이용해 돌격과 매복을 반복하면서 적을 한 명씩 쓰러뜨리는 것이다. 역시 밀리터리 서바이벌의 매력은 ‘총질’에 있었다. “탕. 탕” 하는 단발이 아니라 “드드드드” 갈겨대는 연사가 매력이다. 물론 어둠 속에서 상대를 식별하고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서는 전방을 뚫어지게 관찰해야 한다. 반면에 총질을 당하는 맛은 비참하다.
0.2g의 작은 비비탄이지만 얼굴에 맞으면 기분이 언짢아질 정도로 따끔하다. 기자는 이날 세 번의 게임 모두 최초의 전사자로 기록됐다. “전사”라고 외칠 때마다 ‘다음 기회엔 꼭 복수를…’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지만. 역시나 베테랑들을 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포천=글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 이내정(DOT 스튜디오)
●밀리터리서바이벌 입문하기 장비는 어디에서 구입할까?
모의 총은 공기압축식으로 충전 배터리를 이용해 전동 모터를 돌려 비비탄을 발사하는 원리다. 이런 모의 총은 전문 온라인사이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보통 20만~50만원 선이다. 그러나 모의 총은 관리당국에 의해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일단 외양은 실제 총과 다다르게 보이도록 총기 일부분이 반드시 칼라로 칠해져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총의 파워를 규제하고 있는데. 탄속으로 약 초속 50m 정도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탄속으로는 비비탄의 비거리가 15m밖에 되지 않아 서바이벌게임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게 동호회원들의 말이다. 따라서 보다 효율적인 게임을 위해서 실제 탄속 초속 100m 정도로 진행된다.
●서바이벌대회는 언제. 어디에서?
동호회마다 강원도 철원을 베이스로 하는 북벌팀 주최로 매년 가을마다 ‘백마고지를 사수하라’는 연합전을 열기도 한다. 최대 6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대회다. 이 밖에도 양구서바이벌대회. 육군참모총장배 서바이벌대회 등의 연합전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