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는 전쟁터였다. 살아 있는 것들을 집어삼키며 죽음의 그림자를 몰고 오는 기름띠. 딛고 있는 한 발자국의 갯벌이라도 지키려는 사람들. 기름의 끊임없는 침투와 허물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방어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전쟁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갓 6개월 된 우리나라 최초 환경대대는 이 전쟁터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유조선에서 기름이 유출된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째로 접어든 지난 13일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진 모항항을 찾았다.
모항항(충남 태안)=글 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
■유전이 된 바다와 싸우다 “유전이었어, 유전!”
김형명 117환경대대장(중령)의 첫마디였다. 지난 7일 유조선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바로 그 이튿날 투입 조치 명령이 떨어졌다. 김 대대장은 9일 태안에 도착,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떠오른 생각은 바다가 아니라 그저 유전이라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는 사라졌고, 검은 파도만이 해안으로 밀려왔다. 기자가 모항항에 도착한 13일에도 바다의 비릿한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기름 냄새만이 코를 찔렀다. 그래도 바다는 본래의 푸른 빛을 어느 정도 찾아가고 있었지만 갯벌과 바위는 여전히 검은 빛으로 반짝였다.
기름 제거 작업에 열심인 이병철 병장은 “첫날 기름을 대하니 한숨부터 나왔다”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흡착포와 오일 펜스 등을 다루는 훈련과 오염 시 대응 조치·방법 등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자신감마저 꺾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환경대대가 탄생한 지는 비록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실력은 출중했다. 모항항을 담당하고 있는 해안경찰청 기동방제단의 박승천 주무관은 “환경대대는 이곳에서 실적이 제일 우수하다.
방제 원칙대로 오염이 많은 부분과 적은 부분을 나누어 효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환경대대는 민간인 자원 봉사자들의 출입을 제한한 바위가 많고 오염이 심한 이곳에 투입된 것이다.
■실전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쌓다 이날은 바람이 거셌다. 초속 12~16m의 바람이 큰 파도를 만들었다. 김 대대장은 사나운 파도를 보며 “임무 수행이 항상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게 됐다”라고 말했다. 고가의 장비도 실전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름을 분리해 흡수하는 오일 스키머는 물이 잔잔했을 때나 기능을 발휘할 뿐 파고가 높거나 이번 사고 원유처럼 점도가 너무 높으면 고장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대신 흡착포와 뜰채 등의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고, 조직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높은 효율성을 자랑했다.
장병들은 물이 빠진 때를 이용해 바위 사이에 고인 기름을 걷어 냈다. 물이 점차 들어오기 시작하면 롤 흡착포를 사용해 파도가 치면서 남기고 가는 기름을 빨아들였다. 순백의 흡착포는 잠깐 사이에 기름에 몰매를 맞아 까만 멍이 들었다. 푸른 빛을 찾아가는 듯 보이는 바다 속에선 아직도 기름이 앙탈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환경대대원들의 사기를 꺾진 못한다. 지석렬 이병은 “수위가 낮은 강에서 훈련하다 막상 바다에 오니 다른 점이 많다. 하지만 흡착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소중한 경험이다”며 기름을 제거하는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환경 파수꾼으로 당당하게 서다 현재 모항항에 투입된 환경대대원은 160명. 환경 임무를 전담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번 기름 제거 작업은 앞으로 환경 오염 예방 활동과 오염 확산 방지 대책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1일 공병대에서 환경 전담 부대로 임무를 전환한 환경대대는 반환된 미군 기지 21개 소에 대한 환경오염 순찰 활동 임무를 수행해 왔다. 미군 기지별로 오염원을 확인하며 기지 내에 설치된 관정의 기름 누출량을 주기적으로 측정해 오염도를 데이터화했다.
그리고 일부 누출된 기름은 직접 회수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를 위해 환경관리공단·농촌공사 등 환경 유관 기관과 연계해 직무 위탁 교육을 받았다. 앞으로도 군부대 폐쇄·이전 등과 관련해 전문적 환경 전담 부대로서 구실을 톡톡히 수행할 것이다.
“군이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이번 기름 유출 사고는 주민들에겐 재앙이다. 그래서 환경대대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임무가 바로 군에서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중요한 일인 것이다.” 김 대대장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민간의 환경 오염 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고 감독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는 것이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장비의 보급과 전문 인력 양성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
사납게 아우성치며 검은 발톱을 휘두르는 바다가 머지않아 평온해 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1101공병단 117환경대대는? 2007년 6월 21일 환경 전담 부대로 임무 전환. 환경 오염 사고 발생 초기에 확산 방지·상황 판단·대책 수립 등 적시 대응을 한다. 반환 미군 기지를 주기적으로 순찰하며 오염 물질이 외부로 확산됐는지 확인·방지 임무를 실행하고 있다.
또 군 환경 오염 사고 시 초기 대응, 소규모 지역 오염 토양과 수질을 복원시킨다. 환경 임무를 전담하고 있는 부대는 3군사령부 예하 117대대 이외에 1군사령부 예하 130대대가 있다.
■수질 오염 정화 장비 ▲오일 스키머(Oil Skimmer): 수면에 뜬 비수용성 기름 분리. 모터를 작동시켜 벨트에 흡착된 유류를 회수. ▲오일 펜스(Oil Fence): 유출유 확산 방지 및 차단. ▲오일 붐(Oil Boom): 기름의 확산을 억제하는 동시에 기름을 흡착. 대량 유출 사고 시 오일 펜스 대신에 사용. ▲흡착포: 물을 배척하고 유류를 흡수·흡착. 한 장당 1ℓ의 유류를 흡착. ▲유화제: 흡착포로 제거 후 잔기름 제거용. 기름을 물속으로 분산시켜 자연적 정화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