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한강. 그중 북한강은 팔당댐을 시작으로 청평댐-의암댐-춘천댐-화천댐-평화의 댐 등 휴전선까지 무려 6개의 댐이 수십억톤의 물을 가둬놓고 있다.
이들 댐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호수는 계절의 흐름에 맞춰 멋진 풍경을 연출한 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물든 겨울에도 호수는 나름대로의 운치를 풍긴다. 겨울에는 특히 새벽 안개가 장관이다.
게다가 팔당에서 북한강 수계 최북단인 평화의 댐까지 호수를 따라 도로가 이어져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때마침 화천에서 최고의 겨울축제로 자리잡은 산천어축제가 한창이어서 두 가지의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화천=글·사진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
서울과 강원 춘천을 잇는 46번 국도, 일명 경춘가도를 이용해 청평-가평을 거쳐 강촌유원지를 지나면 의암댐으로 연결되는 56번 도로를 만난다. 이곳이 화천 가는 길의 출발점이다.
구불구불한 2차선의 좁은 길이지만 호수 수면과 비슷한 높이로 길이 이어져 경춘가도와는 다른 느낌을 전한다. 게다가 북한강 수계에 세워진 6개의 댐 가운데 4개의 댐이 만든 호수를 지나게 돼 호반 드라이브 코스로 더없이 좋다.
56번 도로로 접어들면 곧바로 의암댐을 만난다. 댐을 지나면 작은 다리 신연교가 있다. 경춘가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기 전까지 춘천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했던 다리다. 왼쪽으로는 등선폭포로 유명한 삼악산이 병풍처럼 가로막는다.
해 뜨기 직전 의암호는 어슴프레한 여명 속에서 수면 위로 수증기같은 것을 피어올리기 시작한다. 물안개다. 하지만 호수가 워낙 넓은 탓에 수면 위를 날아오르다 곧바로 사라져버린다. 아쉬운 마음에 창문을 열고 살며시 고개를 내미니 영하 10도 언저리까지 떨어지는 강추위였건만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오히려 싱그럽다.
의암호를 지나 10여분 더 달리면 또다른 댐을 만난다. 춘천댐이다. 규모는 의암호와 비슷하지만 좁은 강폭 탓에 담수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때문일까. 호숫가에 이르자 갑자기 눈 앞에 딴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끓는 물이 수증기를 뿜어내듯 끝없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호수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를 뚫고 오리가족이 자맥질에 한창인 모습은 호수 건너편 능선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새벽잠을 몰아내고 눈을 비비며 먼 길을 달려온 성의에 대한 답례라 생각하니 오히려 발걸음이 가볍다.
56번 도로는 춘천댐을 건너온 5번 도로와 합류한 후 화천읍으로 가기 전 사내면과 김화 방면으로 빠져나간다. 이후부터는 5번 도로가 가는 길을 안내한다.
화천읍을 지나 10여분 더 달리면 화천댐이 마중한다. 일제 때 대륙 침략을 위해 세웠던 수력발전소이다. 이 댐 역시 커다란 호수를 만들고 있는데, 댐 이름을 붙인 다른 호수와 달리 이곳은 파로호이다.
왜일까. 원래 화천저수지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화천전투에서 국군이 중공군 수만명을 호수에 수장시키고, 많은 포로를 잡은 것을 치하해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破虜湖)라 이름붙인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파로호안보전시관 뒤 전망대에는 당시 이 대통령의 친필휘호가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호수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오늘도 푸르기만 하다.
화천댐에서 460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40분 정도 가면 평화의 댐이다. 북한강 호반 드라이브의 종점이다. 남북 이데올로기 대결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북한이 금강산 어귀에 임남댐을 만들 계획을 세우자 마치 ‘호떡집에 불난듯’ 방어용 댐을 만들어야 한다며 어린 아이의 코묻은 돈까지 끌어모아 2005년 완공한 댐이다.
그래서인지 댐에 가로막힌 물은 별로 없고, 125m 높이의 댐은 나신을 거의 드러내고 있다. 또한 찾는 이도 많지 않은 듯 댐 건설을 기념해 세운 여러 건물 가운데 물문화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굳게 잠겨 있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출발했을 경우 돌아오는 길은 사내면을 거쳐 포천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선택한다면 교통 체증도 적고 지루하지 않아 좋다. 그리고 백운계곡에서는 동장군축제가 한창이어서 또다른 겨울을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수달과 산천어가 사는 청정지역으로 유명한 화천천에서 열리는 ‘얼음나라화천 산천어축제’는 강원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화천을 전국에 알리게 된 효자상품이다. 주민 인구가 2만여 명에 불과한 화천에 매년 1월이면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축제를 즐긴다.
6회째를 맞는 올해도 예외없을 전망이다. 축제 개막일인 지난 5일에만 6만여 명이 찾는 등 주말 이틀 동안 10만 명이 훨씬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27일까지 계속될 예정이어서 100만 명 돌파는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천군으로서는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매일 주민보다 훨씬 많은 외지인들이 북적이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적정 규모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면 오히려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축제를 진행하는 김준성 화천군 정책기획단 단장은 “지난해까지는 목표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로 정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관광객의 안전과 만족도로 정했다. 규모의 부담에서 벗어나 내실을 꾀하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화천군은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우선 예약전용 낚시터를 마련,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하얼빈 빙등제, 일본 삿포로 눈축제 관계자들을 초청, 얼음과 눈조각 작품으로 꾸며진 ‘아시아 겨울광장’을 조성해 새로운 볼거리를 추가했다.
축제는 얼음낚시가 1만원, 눈썰매가 5000원 등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농산물과 교환할 수 있는 농촌사랑나눔권 또는 화천사랑상품권 등으로 교환할 수 있어 무료 이용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