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8도. 철원은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빵~빵~” 시끄러운 경적 소리도, 화려한 네온사인도 이곳엔 없다. 오직 정적만이 감돈다. 그 정적 속에 번뜩이는 눈동자가 빛을 발한다.
이곳은 철책이다. 고요함 속에 긴장감이 팽팽하다. 바삭거리는 소리만으로도 그 팽팽한 긴장의 끈이 끊어질 것만 같은 곳. 6사단(청성부대)이 철벽같이 지키고 서 있는 GOP(general outpost 일반 전초)를 찾았다.
■토교저수지: 평온 속에 독수리를 만나다
GOP로 향하는 중간에 6사단이 기동 순찰을 맡고 있는 토교저수지를 거쳤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붙었다. “쩡!” “구궁!” 햇볕에 얼음이 우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온다. 이곳에선 독수리100여 마리와 함께 기동순찰팀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추운 듯 독수리조차도 꼼짝 않는다. “동물원에서나 봤던 독수리를 바로 곁에 두고 근무를 설 줄이야….” 김형근 상병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통제 지역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기동 순찰팀은 불법 어로 행위, 불법 출입, 군사 시설 접근, 사진 촬영 등을 막는 임무를 맡고 있다. 유실된 지뢰의 위험 때문이다. 이들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독수리의 눈을 닮아 있다.
■제2 땅굴: 따듯함 속에 놀라움을 만나다
6사단이 책임지고 있는 GOP 바로 아래엔 제2 땅굴이 있다. 1973년 11월 청성부대 장병이 경계 작전 수행 도중 지하로부터 미상의 폭음을 듣고 시추공으로 존재를 확인, 75년 3월 전모가 드러난 북한의 기습 남침용 땅굴이다. 초병의 철통 같은 경계가 빛을 발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크다.
실제로 땅굴에 들어서면 먼저 영상 14도의 기온에 몸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높이 2m의 아치형 땅굴이지만 이동 중에 허리를 굽혀야만 하는 곳이 많다. 500m를 그렇게 들어서니 허리와 고개가 아파올 정도다. 땅굴을 만져 보면 이 단단한 바위를 어떻게 뚫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이곳에서 안보 관광 안내를 맡고 있는 땅굴소대의 정경원 병장은 “군 입대 전엔 땅굴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곳에서 처음 접하게 되니 매우 놀랐다. 안보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고 전했다.
■GOP:고요 속에 나를 만나다
철책에 올라섰다. 멀리 북녘의 오성산이 보인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철조망. 사방이 고요하다. 바람마저도 숨을 죽였다. 100m쯤 떨어진 곳에서 사진기자가 눌러 대는 셔터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하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이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김종호 상병과 김재대 상병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동반 입대한 친구다. 한반도 남단 끝에서 최전방으로 옮겨온 셈이다. “처음엔 너무 추워 혼났다”는 김종호 상병은 “이젠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에 추위도 잊었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힘들 때면 "따듯했던 서귀포 앞 바다, 부모님, 친구들이 생각난다"라고 한다.
김재대 상병은 “부모님이 감귤 농사에 한참 바쁘실 시기인데 아무런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하다. 설 같은 명절에도 찾아뵙지도, 전화도 못 드릴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전역하면 2년치 몫을 다 해드리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적막감이 감도는 전방에서 칼바람을 이겨 내며 경계를 서고 있는 장병들, 그들의 날카로운 눈매는 자기 자신에게도 향해져 있었다. 이들은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어느새 훌쩍 성장해 있었다.
■6사단은?
창군 이전인 1948년 6월 14일, 충주에서 한국군 건군 모체인 제4여단으로 창설돼 당시 편성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가장 먼저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1950년 10월 26일)해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헌수했던 부대이기도 하다.
또한 음성 무극리 전투에서 적 2개 연대를 섬멸시켜 국군 최초의 승전보를 울리고, 7연대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하며 대통령 부대 표창 1호를 수상했다. 1966년부터 전략적 요충지인 철원에 위치하여 철통 같은 GOP 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1975년 초병의 철통 경계로 제2 땅굴을 발견했다.
■제2땅굴은?
서울 북방 100㎞ 지점에 위치한 땅굴은 지하 약 150m에서 화강암층을 뚫고 총 연장 3.5㎞, 군사분계선 남쪽 1.1㎞까지 파내려져 온 것이다. 시간당 1만 6000명 정도가 야포 등 중장비를 들고 침투가 가능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당시 진행된 땅굴 개척 작전 시 북한이 설치한 지뢰와 부비 트랩에 의해 일곱 명의 청성인이 희생되었다. 현재 이 땅굴은 전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안보 관광의 핵심 구실을 담당하고 있다.
철원=글 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사진=이영목 기자 [ymlee@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