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회사에 다니는 A모(32)씨는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잦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새벽 퇴근길에 머리 손질을 위해 명동에 간다. 단골인 명동의 K미용실은 24시간 운영된다. 새벽에 가면 보통 3~4명의 손님이 머리를 깎고 있다.
그는 미용실을 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하게 햄버거로 요기를 한다. 이 때가 이른 아침 5시. 남들이 출근 준비를 할 무렵 밤새 격무에 시달린 몸을 땀으로 풀기 위해 곧바로 자주 가는 헬스장으로 향한다. 헬스장에서 샤워를 하고 난 뒤 찜질방으로 가서 달콤한 잠에 빠져 떨어진 체력을 충전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벽형 인간’이라는 ‘얼리 버드’(early bird·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다. 국무회의를 종전보다 1시간 30분이나 앞당겨 오전 8시부터 열고,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청와대는 일요일 아침에도 수석 비서관 회의를 연다.
이렇게 ‘얼리 버드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4시간족’의 등장은 한국만의 특수한 ‘시(時)테크’ 개념으로 어느새 시대의 풍속도가 되고 있다.
‘24시간족’의 등장은 24시간 쉬는 시간 없이 영업을 하는 업소들과 어깨동무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이미 일반화된 24시간 편의점과 PC방·찜질방·대리운전 등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미용실과 헬스장·패스트푸드점·할인점·24시간 무통분만 등이 합세했다.
또한 광주 무등도서관은 오는 21일부터 연중무휴 24시간 무인도서 반납코너를 설치 운영한다. 심지어 빈소 방문을 자정까지로 엄격히 제한하던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마저 4월 중순 새 건물을 정식 오픈하면 12년만에 24시간 운영으로 바뀐다.
24시간 미용실의 경우 1~2년 전부터 이대입구와 논현동 교보타워 건너편 대각선 방향 골목, 명동 등에 들어서기 시작해 각광받고 있다. 밤새 적을 때는 13~14명, 많을 때는 20명 가량 손님을 받고 있다. 이대 입구의 미용실을 새벽에 이용한다는 B씨(34)는 “늦은 밤에는 나가요걸 등이 많고, 새벽에는 커리어 우먼 등이 자주 찾는다고 들었다. 아침 출근 준비를 미용실에 와서 할 수 있어 시간 절약이 된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맥도널드나 버거킹은 오토바이 5~6대를 구비하고 24시간 배달 서비스를 한다. 회사원인 C씨는 “새벽 2시쯤 주문을 했는데 배달이 밀려 직접 매장으로 가서 햄버거를 사왔다”고 말했다. 찜질방이나 PC방은 출입이 금지된 청소년들의 탈선 현장이 되기도 한다는 비판이 따르기도 하지만 새벽에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실정이다.
심야에도 쇼핑족들이 몰리는 동대문은 물론이고 잠실에 있는 홈플러스(월요일 0~10시 휴관)와 킴스클럽 등 할인점도 매일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새벽 쇼핑객들을 대상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 차병원은 24시간 무통분만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경기를 보기 위한 팬 모임도 잠을 잊은 ‘24시간족’이라 부를 만하다. 박지성의 열혈 팬들은 심야에 술집 등에 모여 경기를 보고 난 후 편의점 등에서 컵라면 등을 먹고 PC방에서 게임을 한판 겨루고 헤어지기도 한다.
●시간 활용의 풍속도
199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회의에서 삼성의 ‘신경영’을 선포했다. 이 때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이라는 근무 시간 변경을 깜짝 발표했다. 기존의 ‘9 to 5’라는 샐리리맨의 근무개념을 바꿨었다. 올해들어 이명박 정부의 ‘얼리버드’ 신드롬이 퍼지면서 공무원의 하루가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