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민속 경기인 씨름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지방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공동화되는 중에서도 경북 의성에서는 여전히 많은 씨름 유망주들이 내일의 천하장사를 꿈꾸고 있다.
가장 많이 회자되던 ‘벌교에서 주먹 자랑, 여수에선 돈 자랑, 순천(이상 전남)에선 인물 자랑 하지 마라’ 말이 나이든 사람에게만 남아있지만 천하장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의성의 힘자랑만큼은 계속되고 있다.
인구 6만 명의 경북 의성. 이곳에선 사계절 빼놓지 않고 현수막이 펄럭인다. 씨름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이다. 1980~90년대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씨름이 예전보다 시들해진 가운데 의성에서만큼은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의성군이 전국 씨름의 메카가 된 것은 군청과 군민들이 똘똘 뭉친 결과다. 의성군은 1957년 4월 4일 의성군민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이 때 씨름 종목을 대회에 포함시켰다. 이 씨름 대회가 개최된 후 의성군 체육회가 창립됐다. 전국 최초 군 단위 씨름 대회가 개최되면서 힘 깨나 쓰는 장사들이 의성에 몰려들었다. 매년 10여 개의 크고 작은 씨름 대회가 의성에서 열렸다. 이 씨름대회가 오늘날 의성이 씨름의 메카로 발돋음 한 계기가 되었다.
■장사 씨름사관학교
군청이 주관한 씨름 대회가 계속되면서 의성에는 국내 최초의 씨름 도장이 생겼다. 지금은 사라진 '금성체육관'이다. 이곳에는 내일의 천하장사를 꿈꾸는 의성 장사 씨름의 사관학교였다.
금성체육관 출신 씨름 장사들이 지금도 한국 씨름계의 산파 노릇을 하고 있다. 금성체육관 초대 관장이며 민속씨름 출범의 주역인 민속씨름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이자 현 경북씨름협회장인 김태성(68) 장사다.
또 1960년대 초 초대 거인 장사 김용주에 이어 등장한 2대 거인 장사가 박범조씨다. 거구(204㎝·125㎏)인 그는 1970년대 중반까지 모래판에서 강자로 군림했다. 전 국민을 통틀어도 2m 장신이 별로 없었던 당시 박범조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화제거리였다.
이외에도 김창환 전 한영고 감독, 김영구 안계고등학교 교감, 민속씨름 초대 태백장사를 지낸 박진태 전 현대중공업 감독,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전 신창건설 감독, 신명수 KBS 씨름 해설위원, 박재영 전 한라장사 등이 금성체육관이 배출한 스타다.
금성체육관 출신 씨름인들은 지난 1983년 4월 민속씨름대회 출범을 이끌었다. 80년 대 이후 민속씨름은 국민들에게 가장 각광받았던 스포츠였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며 10개팀이나 되던 프로씨름단 대부분이 해체됐다. 게다가 주도권을 둘러싼 씨름인의 갈등이 심해져 최홍만·김영현·이태현 등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씨름판을 떠나 격투기가 전향하면서 씨름이 국민으로부터 멀어졌다.
■내일을 꿈꾸는 씨름 새싹
씨름이 대중속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의성은 여전히 씨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경북 의성중학교 씨름장. 이곳에는 오후가 되면 의성중·고등학교·의성군청 소속 선수들이 내일의 천하장사와 씨름 부흥을 꿈꾸며 굵은 땀방을 쏟아낸다.
의성 씨름의 명성은 소속 선수들의 성적이 말해준다. 의성중학교 지한주 부장 교사는 "의성 중·고등학교 선수들은 전국 최강의 선수진이다. 이들이 한국 씨름의 미래"라고 추켜세웠다. 지난해 중등부 전국 7관왕 최성환과 전국소년체전에서 1위에 입상한 노태우 등이다.
지난 3월말 경북 안동서 열렸던 경북소년체육대회에선 의성중학교가 휩쓸었다. 3학년 이민기(청장급), 이준희(역사급), 2학년 김준년(장사급)이 1위에 입상, 5월 31일 광주에서 열릴 예정인 전국소년체육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또 3월 개최됐던 제43회 회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의성중학교 2학년 윤필재(경장급)가 1위를 차지했고, 3학년 김재우(장사급)가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씨름대회에서 7관왕을 차지한 최성환은 "부모님의 권유로 씨름을 했다.
씨름이 너무 재미있다. 천하장사가 꿈이다"라고 말했다. 배용수 의성고 감독은 "이들이 흘린 땀방울이 앞으로 한국 씨름계의 씨앗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상북도는 의성군을 씨름의 메카로 키울 작정이다. 지난해 12월 경북은 의성군을 씨름 특구 지역으로 지정했다. 김복규 의성 군수는 "의성군민이 가장 좋아 하는 스포츠가 씨름이다. 의성이 씨름 도시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군민이 합심해 씨름 메카 지역으로 육성시키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