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검(눈 깜짝 할 사이에 번개처럼 옷을 바꿔 입는 마술)은 중국이 원조다. 자식에게도 변검 비법을 함부로 가르치지 않는다. 철저한 일대일 사제전수 방식으로 독보적 명성을 세계에 떨쳐왔다. 그런데 ‘한국형 아리랑 변검’으로 동남아는 물론 중국 본토진출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마술사 김청(46) 동아인재대학교 마술학과 교수다. 디스코와 브레이크 댄스 경력이 15년이나 된 직업댄서였던 그를 만나 마술 같은 마술인생을 들었다.
김청 교수는 대학에서 전자과를 졸업하고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러나 내면에 꿈뜰대는 끼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1970년대 말 하이야트호텔에서 열린 디스코 경연대회에 우연히 나가 놀랍게도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내가 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다.” 당시 우승자는 훗날 어릿광대 복장으로 감기약 선전을 해 유명해진 차환이씨다.
그는 이를 계기로 샐러리맨 생활을 접고 브레이크댄스·로버트춤·인도춤·마네킹춤·인디안춤·불춤 등 다양한 춤을 섭렵했다. “당시 불쇼로 유명했던 인천의 칠용이 부자를 무턱대고 찾아갔다. 생판 남인 내가 비법을 얻기까지 쉽지 않았다.
쇼를 하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환기가 잘 안되는 작은 공연장에서 연기가 덜 나게 하려고 신나를 사용했다가 큰 화상을 입었다. 무심코 볼을 만졌더니 피부가 주르륵 녹아내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갖은 고생 끝에 춤과 불쇼를 접목시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마술사로의 전업은 영화 ‘불후의 명작’(박중훈 주연)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대포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보고 동춘 서커스단 홍승호 부단장이 소질이 있다며 마술사의 길을 권유했다. 무용은 나이 먹으면 현역에서 은퇴해야 하지만 마술은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마술에 입문했다.
마술은 개인차가 심하다. 재능이 없으면 반년을 연습해도 못 배우는 기술을 재능 있는 사람은 한 달이면 마스터한다. 늦깎이 마술 수업이었지만 일취월장했다. 현대 마술에서는 기술 외에도 무대매너와 관객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기에 댄서로서의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뮤지컬 ‘퀸 에스더’와 오페라 ‘리골레토’에 출연하고 인천방송 ‘파랑새는 있다’ ‘인간시대’ 등 방송에도 30여차례 출연하며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CEO들이 장기자랑을 하기위해 단체로 찾아와 마술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우리 마술카페를 방문해 신문지 찢는 마술을 배워갔다.”
중국배우 류더화에게도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은 변검기술을 2년 전 중국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명성과 성실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지난 7~11일까지 열린 베트남영화제에서 ‘아리랑 변검’을 공연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국형 변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리랑 변검은 중국 변검에 한국탈춤을 접목시킨 한국형 변검이다. 중국변검이 옷을 바꿔 입는데 반해 아리랑 변검은 하회탈·봉산탈·양주별산대 등으로 순식간에 얼굴을 바꾼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홍보방송에도 출연했다.”
그의 꿈은 라스베이거스처럼 마술전용극장을 운영하는 것과 한국형 마술공연으로 ‘점프’처럼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전인 춘향전의 어사 출두장면이나 별주부전의 수궁장면, 놀부전의 박타는 장면에 마술을 접목시키면 정말 실감나고 재미있지 않겠는가. 또 판소리 장단에 맞추어서 마술공연을 하면 외국인들에게 정말 인상깊은 장면으로 각인 될 것이다.”
대학교 마술학과는 한국이 세계 최초
현재 한국에서 마술학과가 개설된 대학교는 두 곳이다. 동아인재대학교(전남 영암 소재)와 동부산대학교다. 대학교 정규과정으로 마술학과가 설치된 것은 한국이 세계 최초다.
동아인재대학교 마술학과의 경우 전원에게 기숙사가 제공되며 한학기에 85%이상 출석하면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학교측의 배려와 지원이 각별하다. 몇 년전 유행했던 마술을 가르치면 “에이~”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다.
학생들의 실력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미국·일본·호주 등 세계마술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도 수두룩하다. 취업률은 80%에 육박한다. 마술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 마술사 이외에도 마술도구 제작판매, 학교축제나 기업행사와 콘서트의 이벤트 대행, 대기업 리조트까지 진출 하는 길이 다양하다.
김형빈 기자 [rjaejr@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