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와 체코의 개막전을 보기 위해 서둘러 바젤에 도착했다. 경기 시작까지는 앞으로 5시간. 그러나 바젤 역은 이미 스위스 축구팬에게 점령된 상태였다.
마치 경기 중인 관중석을 옮겨놓기라도 한 듯, 얼굴에 스위스 국기를 그려 넣은 팬들은 춤추고, 노래하고, 응원 구호를 외치며 축제를 즐겼다. 가발을 쓴 사람, 키가 높은 모자를 쓴 사람, 바이킹 뿔처럼 생긴 장신구를 단 사람 등 축제를 즐기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호프 스위스'를 외치는 그들의 열정은 열광적이라고 소문난 잉글랜드 팬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경기 후 스위스 팬들이 보여준 태도였다.
이 날 스위스는 상대팀 체코보다 경기 내용은 더 좋았지만 점수에서는 0-1로 무릎을 꿇었다. 안방에서 열린 경기였기에 더 아픔이 컸다. 심판의 판정 중에는 스위스 팬들로부터 '페널티킥인데 불지 않았다'고 오해를 살만한 것도 있었다.
'체코 관중들 집에 가기 힘들겠군'이라는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스위스 팬들은 체코의 응원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충돌 없이 속속 경기장 밖으로 빠져 나왔다.
스위스의 한 팬에게 '오늘 패한 것이 억울하지도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그게 바로 축구 아니냐"고 반문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을 넘어서 적대시하는 훌리건이 유럽 축구 문화의 정수라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몇몇 국내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바젤에서 이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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