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활지 어딘가에서 둔탁하게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K1 전차 한 소대가 나무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승무원들은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온몸에 맞아 헬멧과 전투복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비구름 뒤에서 빛나고 있는 태양처럼 강렬하다.
대항군의 역습에 대비해 잔뜩 경계를 하고 있는 눈초리가 매섭다. 지난 달 21일 기자는 26사단 대대전술훈련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전지역을 찾았다.
■쏜살같이 움직이다
기자가 동승한 전차는 주공격진에서 벗어나 차후 작전을 위해 이동, 한 시간째 대기 상태다. 5월말이 다가오는 데도 비에 젖고 세찬 바람을 맞다보니 한기를 느낀다. 하지만 주경호 소대장의 몸에선 열기가 피어오른다. 무선 수신을 듣는 귀와 망원경을 통해 대항군의 전차를 발견하려는 눈은 조금도 쉴 틈이 없다.
드디어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웅크리고 있던 전차는 엔진소리로 기지개를 켜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51t의 무게를 이끌고 시속 60㎞로 질주하는 전차는 거침없다. 그 누구도 앞을 막아설 수 없을듯하다. 주 소위는 지도를 펼쳐놓고 공격지점을 확인하며 조종수에게 진로를 지시한다. 조종수인 최상범 이병은 “전차 주행 중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신속한 기동이다. 또한 안전운행도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한다.
뒤를 돌아보니 엔진의 열기로 가물가물해진 공기 사이로 뒤따라오는 아군의 전차들이 보인다. 차례차례 목표지점을 통과하던 중 대항군 전차를 한 대 발견했다. 주 소위는 사수에게 조준을 명하고 “쏴”라고 외친다. 대항군 전차가 격파됐다. 그리고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계속 전진한다. 주 소위는 “전차를 지휘하는데 있어서 기동간 사격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사격과 생존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숨은 적도 발견하다
이번 전술훈련평가는 한탄강을 사이에 두고 공격과 수비로 맞선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주 소위가 이끌고 있는 소대는 공격하는 쪽이면서도 대항군의 역습을 막는 수비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질주하던 전차가 갑자기 멈추어섰다. 소대장의 눈이 번뜩인다. 망원경으로 전방을 확인하고 나서 “적전차 ○대 발견. 포병 화기 지원 바람”이라고 전달한다. 소대가 맞서기엔 대항군의 규모가 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기자의 눈엔 전혀 대항군의 전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 소대장은 “은폐나 엄폐가 가능한 지역, 또는 목 지역에서는 적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본다”고 말한다. 포병의 지원으로 대항군의 전차가 섬멸됐다. 훈련이라는 가상 상황이었기에 섬멸된 대항군의 전차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때서야 비로소 대항군의 전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훈련은 한국적 지형에 맞는 급속전개, 장애물지대 우회 및 돌파, 고착견제 및 측방타격, 통합화력 운용 등을 배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데 잠시만의 전차 동승만으로도 그 성과를 살펴볼 수 있었다. “즉각 전투돌입 및 전승 가능한 부대”라는 최종목표도 멀지않게 느껴진다.
■26사단은
1953년 6월 충남 논산에서 창설됨. 이후 화천·양구·연천을 거쳐 1964년 현 위치인 양주시로 이동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4년 10월 평시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 수도권 방어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보병사단에서 기계화보병사단으로 개편됐다.
평시에 수도 서울 북방의 전략적요충지에 위치하여 실전적인 교육훈련으로 최정예 공격부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 소규모의 적 침투시 이를 조기에 발견하여 격멸하고,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에는 국군의 최선봉에서 적 부대를 격멸하는 공격부대의 임무를 수행한다.
1961년에 육군 최초로 자동화사격 시범식 교육을 실시하였고, 1965년에는 태권도 사단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2년에는 전군 최초로 과학화된 훈련기법을 적용하여 전투지휘훈련(BCTP)을 실시하는 등 육군교육훈련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연천=글·이방현 기자 [ataraxia@joongang.co.kr] 사진·이호형 기자 [leemari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