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많은데도 무의식적으로 고양이처럼 혓바닥 내밀고, 고개를 털곤 한다. 사람들이 쳐다봐 얼굴 빨개진 적이 있다."(정주영)
뮤지컬 '캣츠'의 배우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현상이다. 이제까지는 사람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캣츠' 무대에 서는 순간부턴 철저하게 고양이가 되야 하기 때문이다. 발레 '돈키호테' '호도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등에서 열연한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정주영도 예외일수 없다.
정주영(30)·유회웅(24)·백두산(25) 등 세계적 수준의 발레리노 3인방이 '캣츠'를 통해 뮤지컬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리는 '캣츠' 첫 한국어 공연의 프리뷰 무대(티켓링크(www.ticketlink.co.kr) 단독 20% 할인 판매)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뮤지컬 도전은 '캣츠' 한국어 공연의 최고 화제거리 중 하나다. 정주영은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 역을, 같은 국립발레단 무용수인 유회웅은 마법사 고양이 미스토펠리스, 다양한 발레 무대를 누빈 백두산은 정의의 고양이 알론조 역을 맡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 전공 선후배로 뮤지컬 무대 데뷔를 앞두고 전혀 주눅들지 않는, 개구장이 같은 발레리노 3인방을 만났다.
- 국립발레단 주역 출신이 뮤지컬 무대에 서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정주영) "뮤지컬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은 한 단 명도 없었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님도 내 도전을 응원해주셨다. 물론 이제까지 발레에 공을 쏟았는데 밖으로 나간다고 하니 발레 팬들은 아쉬움을 표한다. 발레쪽 동료들은 내가 너무 크게 성공할까봐 오히려 걱정하고 있다.(웃음)"
- 왜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됐나?
(정주영) "돈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다. 돈 때문이라면 원래 있던 쪽이 나을 지도 모른다.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노래도 하고, 더 자유롭게 연기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관객과 더 가까이 할 수 있는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막상 왔더니 (연습량 때문에) 이 쪽이 훨씬 고생스럽다."
(유회웅) "2003년 '캣츠' 내한 공연을 보고 일기를 쓴 적이 있다. '꼭 '캣츠'를 해보고 싶다'고. 주영이형도 이번 오디션에 원서 넣은지는 깜쪽 같이 몰랐다. 평소 주영이형이 뮤지컬에 관심 많은 것 같아 자문을 하려 물었다가 형도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둘이 같이 노래 연습하며 준비했다. 지금은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백두산) "나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장르의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뮤지컬은 처음이지만 그렇게 낯설지 않다."
- 이제는 토슈즈 대신 고기와 함께 살게 됐다는데….
(유회웅) "발레할 때보다 훨씬 춤을 많이 춘다. 체력 소모가 엄청 심하다. 원래 고기를 즐기지 않았는데 지금은 매일 고기 먹는다. 아침도 항상 고기로 시작하고, 점심·저녁도 기회만 있으면 고기 먹는다. 강호동처럼."
(백두산) "밤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번갈아 먹는다. '캣츠' 연습 들어가면서 살이 엄청 빠졌다."
(정주영) "나는 아예 고기 도시락을 싼다. 별명이 '고기집 아들'이 됐다. 여기서는 정말 끼니를 한 번도 거른 적 없다. 공연 한 번 하면 땀을 1리터 흘리고, 티를 4~5번 갈아입는다."
- 고양이 역에 몰입하다 벌어진 에피소드는?
(유회웅)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 일이다. '캣츠' 음악 지으며 나도 모르게 고양이가 냄새 맡느라 코를 벌름거리는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에 앉은 두 여자가 깔깔 거리고 웃었다."
(백두산) "알론조는 약간 거만한 고양이이기도 하다. 고개를 젖히고 상대방을 사선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됐다. 고양이처럼 크랙션만 울리도 신경이 예민해졌다."
- 발레만 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유회웅) "발레할 때 항상 뻣뻣하고 몸에 틀을 갖추고 움직여야 하는데 뮤지컬에선 몸을 풀었다 조였다 해야 한다. 그게 조금 다르다. 처음에는 노래 안 시켜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노래가 없는 게 다행이다."
(백두산) "오히려 발레한 사람이 유리하다. 이 작품은 발레를 알아야만 하는 작업이다."
- 함께 연습하며 본 옥주현은?
(유회웅) "'누나'로 부르며 친해졌다. 옥주현은 항상 동료들에게 먹는 걸 챙겨주어 매력적이다. 옥주현은 도시락을 크게 싸와서 나눠 준다."
- 앞으로 계속 뮤지컬 무대에 도전할 건가?
(정주영) "나는 이제 뮤지컬에 전업한다. 그러나 발레를 버리는 건 아니다. 노래 연습 열심히 하고 있다. 해 보고 싶은 뮤지컬이 너무 많다."
(유회웅) "아니다. 안무에 관심이 많다. 키가 작아 발레에서 역할이 한정되어 있었다. 뮤지컬 경험을 바탕으로 안무 연출가로 성공하고 싶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mg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