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박식한 언어 학자 히긴스 교수는 절망적으로 외친다. 실험 삼아 집에서 살게 했던 천한 소녀 일라이자가 숙녀가 되어 집을 떠나려 하자 애원하는 장면이다.
추석은 가족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다. 더구나 다소 어두운 경제·사회 분위기에서 가족은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올 추석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공연과 함께 하면 어떨까. 추석을 맞아 '가족'을 키워드로 한 공연 베스트5를 소개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
성장 배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통해 이루는 것이 가족이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삼은 이 뮤지컬은 신분이 전혀 다른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김소현이 천한 신분의 아가씨에서 사교계의 요정이 되는 여주인공 일라이자 역을, 탤런트 출신으로 뮤지컬에 도전한 이형철이 학식은 많지만 진정한 사랑이란 걸 해보지 못한 언어학 박사 히긴스 역을 맡았다.
히긴스는 내기의 일환으로 길거리에서 만난 일라이자를 요조숙녀로 키워내지만, 일라이자가 진정한 사랑을 요구할 때 사랑에 있어서는 아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을 발견한다. 1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한밤의 세레나데
딸과 엄마가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는 뮤지컬. 딸과 엄마의 대립으로 긴장이 흐르면서도 훈훈한 웃음과 재미도 갖추고 있다. 서른 세살 노처녀 박지선(백미라)가 직장도 없이 빈둥빈둥 소일하고, 남편 없이 순대국집을 하며 집안을 꾸려나가는 엄마 박정자(장유경)는 딸이 답답하기만 하다.
도너츠를 튀겨 파는 딸의 남자친구도 불만스럽기만 하다. 지선의 방을 스튜디오, TV 겸 무대로 활용하는 연출도 독특하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해답을 찾을까. 10월19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그대를 사랑합니다
평소 눈물샘이 말랐던 사람이라면 이 연극을 추천한다. 달동네에 사는 네 노인이 인생의 마지막까지 진정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내를 병으로 잃고 홀로 사는 김만석 노인은 기구한 일생을 살아온 송이뿐 노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장군봉은 치매 아내와 함께 가스를 틀어 놓고 삶을 마감한다. 장군봉과 아내의 최후에서 관객은 눈물에 전염된다. 오픈런, 대학로 더굿씨어터.
○잘 자요, 엄마
역시 딸과 엄마의 소통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상황은 극한으로 설정되어 있다. 딸은 엄마에게 자살을 예고하고, 엄마는 딸의 자살을 막으려 한다. 그 마지막 2시간이 이 연극의 배경이다.
엄마로 더블캐스팅 된 나문희와 손숙의 연기 대결은 이 연극을 두 번 보게 만든다. "연습 첫 날부터 우리 너무 많이 울었다"는 손숙의 고백처럼 배우들이 두 시간 동안 온 몸의 에너지를 쏟아내도록 하는 작품이다. 11월 2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금녀와 정희
엄마와 딸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아닐까. 그러기에 엄마와 딸은 사랑하면서도 싸운다. 이 연극은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두 사람을 각각 다른 개성으로 바라본다. 나이 들어가면서 만난, 긴밀한 타인으로 두 여자만 있을 뿐이다. 금녀 역은 백현주, 정희 역은 권지숙이 맡았다. 10월 12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