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한 가운데 자리한 우즈베키스탄은 ‘섬나라’다. 섬이라는 단어를 바다 뿐 아니라 땅으로 둘러싸인 채 일정한 영역을 가진 지역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설명한다면 말이다. 주위로 카자흐스탄·키르키스스탄·아프카니스탄 등 이른바 ‘~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슬람어 ‘스탄’으로 둘러싸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접하지 못한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 나라중 하나다.
그런데 푸른 물결 출렁이는 바다 대신 ‘희망의 바다’가 있었다. 과거 동서양 문물을 전파하던 상인들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될 오아시스를 곳곳에 곳곳에 품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를 바탕으로 곳곳에 문명을 전파하는 실스코드의 허브로 발전, 한 때는 서남아시아 일대를 호령하는 제국을 건설했던 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이다.
지금도 실크로드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대표적 도시가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다. 사마르칸트는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사람이 모여살며 도시를 형성했다니 그 역사가 4000년을 넘기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280㎞ 떨어진 사마르칸트는 일찍부터 실크로드의 중간에 위치해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게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다.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을 시작으로 세계 최대의 제국을 형성한 징기스칸, 그리고 이들과 함께 세계 3대 정복왕으로 꼽히는 아밀 타미르까지 이 도시를 거쳐갔다. 사마르칸트를 거치지 않고서는 동서양 어디고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는 뜻을 가진 우즈벡어 사마르칸트가 이 도시의 이름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일듯 싶다. 지금도 인구 36만여 명의 사마르칸트는 우스베키스탄에서 타쉬켄트에 이은 제2의 도시로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다.
사마르칸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 전부터이지만 정식 도시로서의 기능을 가진 것은 기원전 750년 경이다. 이는 로마의 역사가 시작된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사마르칸트의 역사를 로마와 동일시하고 있다.
특히 아밀 티무르가 자신의 왕궁을 이곳에 두면서 사마르칸트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사마르칸트에는 티무르제국 이후 만들어진 유적이 대부분이다. 다만 티무르왕의 사망 이후 수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감으로 인해 왕궁 대신 영묘나 사원 등만이 남아 있는 점은 유감이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티무르왕이 묻힌 구르에미르 영묘, 대상들의 물물교환 장소로 이용됐던 레기스탄 광장과 이를 3면으로 둘러싼 3개의 메드레세(이슬람 신학교) 등이 꼽힌다. 특히 이들은 서남아시아 최고의 아름다움을 갖춘 건축물로 사마르칸트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내를 지나다 보면 거대한 옥색 돔을 이고 있는 대형 건물이 눈에 띈다. 구르에미르 영묘다. 1403년 티무르왕은 끔찍히 아끼던 손자 무하마드 술탄이 죽자 1년 6개월 만인 1405년 이 건물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도 같은 해 명나라 원정 도중 고령으로 숨을 거두면서 이곳에 묻히게 됐다.
전통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영묘의 돔은 주름이 63개 있는데, 이는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숨을 거뒀을 때의 나이로 이슬람에서는 신성시하는 숫자라고 한다. 돔에 63개의 주름이 있는 건물은 이 영묘가 유일하다. 내부는 금으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새겨넣는 등 화려하게 치장했다. 영묘 좌우로는 과거 상인들이 묵었던 숙박 시설이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구르에미르 영묘에서 동쪽으로 약 1㎞쯤 가면 ‘모래의 땅’이란 의미의 레기스탄 광장에 이른다. 정면에 서면 쌍둥이처럼 똑같은 건물이 서로를 바라보며 좌우 대칭을 이루고, 정면으로 또 하나의 건물이 이들을 바라보며 멋진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과거 동서를 오가던 상인들이 모여 물물교환을 하던 실크로드 최대의 시장이었으나 울르그렉이라는 학자가 1417년 이슬람 신학교인 메드레세를 세운 이후 그의 후손들이 반대편에 시르도르 메드레세를 만들었고, 정면으로 탈라가리 메드레세가 들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화려하기만 했던 이들 건물은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해 낡고 퇴락했다. 게다가 1966년 지진으로 시르도르 메드레세의 첨탑 하나와 실내 복도가 조금 기울었다. 현재 보수 공사중이지만 적은 예산 탓에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고 한다.
이들 메드레세 내부에 들어서면 기념품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역사 유적 내부에 상점이 들어선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현물 교환을 위해 형성된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국가라는 역사성을 감안하더라도 선조의 혼이 담긴 문화재 관리 방식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밖에 수십 명에 이르는 타미르왕의 애첩 가운데 한 명인 중국인 비비하눔을 안장한 비비하눔 영묘, 사마르칸트의 4000년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 아프로시압 박물관 등도 들러볼 만하다. 아프로시압 박물관에는 특히 7세기 벽화가 전시돼 있다. 1965년 발굴된 이 그림에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속지아나국의 바후르만왕을 알현하기 위해 찾아온 고구려 복장의 그림이 있어 눈길을 끈다.
비비하눔 바로 옆에 있는 사마르칸트 최대의 재래시장도 돌아볼 만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주식으로 빵의 일종인 리뾰쉬카, 우즈베키스탄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건과류, 식료품 등을 팔고 있는데, 가격이 생각 이상으로 싸면서도 구입할 때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