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 마천루는 뻗어가는 중국 경제를 대표한다.
2008년 12월 기준으로 공식 인구만 1800여만 명. 유동인구를 합하면 2500만 명이 넘는다는 대도시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도시는 현대화라는 명찰을 단 포클레인에 전권을 내준 모양이다.
‘힘 없고 백 없는’ 소시민들이 하릴없이 밀려나는 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10년 동안 매년 한 차례씩 방문했지만 상하이는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마냥 새로운 것만 찾지 않는 것 같다.
옛것에서 추억을 더듬고, 미래를 꿈꾸는 낭만도 적지않다. 20세기 초반 풍경을 간직한 ‘신티엔디’가 대표적이다. 물론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포강 서쪽, 와이탄도 빼놓을 수 없지만.
새로운 하늘과 땅, 신티엔티 신티엔디는 신천지(新天地)의 중국식 발음이다. 새로운 하늘과 땅이란 뜻이다. 지금까지 상하이 하면 둥방밍주를 비롯해 수백m 높이의 빌딩이 하늘을 찌르는 푸둥을 떠올렸다.
강 가에 갈대가 무성한 황무지였던 땅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이곳이 신천지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름은 전혀 엉뚱한 곳이 차지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지 궁금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찾는 상해임시정부 청사에서 가까운 신티엔티는 2001년 홍콩 재벌이 상하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조성한 거리다. 동서 약 300m, 남북 약 500m에 불과한 직사각형의 구조다. 중간에 싱예루라는 작은 길이 동서를 관통한다.
그 안에 41개의 패션 및 기념품점, 39개의 레스토랑, 12개의 바, 그리고 12개의 갤러리, 쇼핑센터 등이 몰려있다. 건물은 대부분 20세기 초 지어진 것을 리모델링했다. 그런데 겉 모습만 중국식일 뿐 거리를 메운 파라솔과 탁자, 인테리어 등 전체적인 분위기는 유럽에 가깝다. 신티엔디 주변은 수십층의 빌딩이 둘러싸고 있어 더욱 이채롭다.
중국스럽지 않은 노천카페 오전인데도 짙은 구름으로 시간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을씨년스럽다. 구름이 많고, 이슬비가 자주 내리는 상하이 겨울의 특징이다. 신티엔디는 남쪽 길인 타이창루(太倉路)에서 시작한다. 검은색 보도블록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길을 따라 카페가 줄을 잇고 있다.
폴·스타벅스·브라운슈거·빈 등 이름뿐 아니라 점포 밖에 예쁜 탁자와 의자들을 가지런히 내놓은 모습이 전혀 ‘중국스럽지’ 않다. 마치 노천카페가 즐비한 유럽의 한 거리를 걷는 느낌이다.
그런데 건물을 보면 중국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좁은 골목을 경계로 벽돌로 지은 건물은 전형적인 중국풍이다. 특히 스쿠먼(石庫門)이란 양식이 눈에 띈다.
스쿠먼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1851~18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에 머물던 유럽 사람들은 전국을 휩쓸던 난리를 피해 상하이로 몰렸다. 이들이 임시 거처로 삼기 위해 집을 지을 때 생겨난 것이 스쿠먼이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아치형 나무 틀에 벽돌을 쌓아 입구를 만들었다. 서양식의 화려함과 중국식의 소박함이 곁들여진, 상하이 특유의 건축 양식이다.
스쿠먼 양식은 1920년대 상하이에서 유행했는데, 현대화에 밀려 차츰 사라지는 추세다. 뒤늦게 시 당국이 보존을 강조했고, 과거에 현재를 접목한 것이 신티엔디다.
신티엔디 거리 한 구석에 이채로운 건물이 하나 있다. 다른 건물과 달리 붉은색으로 치장한 건물인데, 1961년 중국 공산당 1차 전국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중국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 보존하고 있지만 쉽게 지나치기 쉬울 만큼 외관은 소박한 편이다.
밤에 살아나는 자본 해방구 한산하다 싶을 만큼 인적이 드문 신티엔디는 밤이 되면 화려하게 변신한다. 현란한 네온사인 등은 눈에 띄지 않지만 은은한 조명이 오히려 분위기를 살린다. 낮에는 관광객 등 외지인의 차지였다면 밤은 젊은이가 지배한다. 외국인도 적지 않다. 아니, 외국인이 더 많은 듯하다.
거리 뿐 아니라 카페에도 젊음이 가득하다. 커피 한 잔, 또는 맥주 한 병에 40위안(약 8800원)이 넘는데도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 다만 아직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야외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많아 보였다. 그래도 야외용 가스 버너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손님이 꽤 있었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벌써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젊은이도 자주 보였다.
카페 종업원 웡차이(23) 씨는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손님이 조금 줄어든 편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룰 만큼 발길이 잦다”고 말했다.
신티엔디의 밤은 자정이 넘어도 왁자지껄, 젊음으로 출렁인다. 상하이 사람들은 말한다. “신티엔디는 젊음의 해방구다. 보존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오후 10시가 넘어가면 셔터를 내리는 상하이 문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들만의 특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