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남박사의 말·승마 이야기] 승마, 작은말부터 시작하는게 합리적
승마에 있어서 말은 스포츠 장비로서 위치를 지니고 있다. 모든 스포츠의 장비는 무생물인 반면, 유독 승마만 살아있는 그리고 감정을 가지고 있는 유생물이다.
스포츠 장비로서 말이 기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크게 두가지라 할 수 있다. 하나는 말의 골상과 근육 등 말의 육체적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과 기분 등의 정신적 영역이다.
육체적 영역에서 기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름아닌 체고다. 체고의 크기에 따라 반동의 사이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동의 높이나 폭이 크면 그만큼 기수의 움직임도 클 수 밖에 없다. 체고의 크기에 따라 기수의 열량 소비량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처음 스키를 배울 때, 설면이 낮은 완사면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스키를 콘트롤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서핑도 낮은 파도에서부터 평형감각을 익히며 파도에 몸을 싣는 방법을 배운다. 수상스키는 아예 두 발에 스키를 싣고 부상하는 two-ski부터 시작한다.
이처럼 스피드와 사인커브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스포츠는 예외없이 입문할 때는 가장 낮은 스피드와 사인커브의 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거스르게 되면 그만큼 '역보상'이 따르게 되는데 심각한 상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승마의 경우 체고가 낮은 말에 기승해 다양한 보법과 스피드, 그리고 사인커브의 각 즉 반동의 감각을 터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이상적인 트레인닝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일부이긴 하지만 체고가 큰 말에 기승하는 것이 마치 말을 잘 타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 이런 오해는 승마의 운동역학을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물론 큰 말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리지 못한데도 오해의 원인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유소년의 경우는 반드시 그들의 신체조건에 맞는 체고를 선택해야만 한다.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이상적인 말체고는 대략 150∼155cm가 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체고는 말이 평지에서 네다리로 정확하게 직사각형으로 섰을 때, 땅에서부터 기갑까지의 높이를 말한다. 지금 우리가 기승하고 있는 외국산 승용마는 대개 160∼165cm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조금 높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이는 서양인의 신체조건에 유리하게 맞춰진 체고다.
체고가 높은 말에 입문하게 되면 반동의 높이와 폭이 부담스럽게 커 기승자가 상체 특히 허리에 힘을 빼지 않는 한, 반동을 부드럽게 받아내거나 따라가기가 버거워진다. 이런 경우 초보자들에게는 상체의 힘을 빼기는커녕 오히려 근육의 경직을 부채질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 된고 만다.
차라리 체고가 낮은 말에 기승해 스피드와 반동에 적응한 뒤 체고가 큰 말로 바꿔 타는 것이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으며 안전을 확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런 트레이닝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승마장측에서 다양한 체고의 말을 확보하지 못한데 따른 원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체고에 따른 승마의 운동역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체고가 낮은 말에서부터 큰 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고의 말을 기승하게 되면 그만큼 자세나 기승술도 완성도가 높아지게 된다. 시간을 단축하면서 안전하고 풍부한 기승술을 습하기 원한다면 처음 입문한 때, 가장 편한 말을 선택해 기초를 완벽하게 닦은 후 다른 말로 옮겨 기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 편한 말이란 비교적 체고가 낮은 말을 의미하는데 자신의 신장과 거의 비례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후 체고가 큰 말로 옮겨 기승하면 처음부터 큰 말에 덤벼 버걱거리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남병곤 한국마사회 상임이사 제주본부장/승마역학 박사 [horsefilm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