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의 에로스케치>이영미의>
여자 A는 남편과 공원을 산책하다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다. 이 때 그걸 본 한 남자가 여자화장실로 따라 들어가 A의 화장실 문을 노크했다. A는 남편인 줄 알고 ‘자기야?’라고 말하면서 밖이 보일 정도로 문을 열어주었고, 그 순간 남자는 칸으로 들어와 A의 입을 강제로 틀어막고 강간을 시도했다. 그 때 남자화장실에 있던 남편 B가 들어와 남자를 제압했고 남자는 B에게 전치 2주의 관절 부좌상을 입었다. 이 경우에 어떤 죄가 성립될까?
남자는 강간을 하지 않았고, A가 문을 먼저 열어주었다면서 쌍방과실을 주장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간을 시도한 남자가 형법과 성폭력 특별법에 의해 검거됐다. 죄목은 주거침입죄, 감금죄, 강간치상죄다. 공중화장실이라도 본래 화장실은 사적인 공간으로 보기 때문에 주거침입죄를 적용하고, 강간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강간 미수로,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혔기 때문에 강간치상죄가 적용된다.
또 다른 사건. 남자 2명과 여자 2명이 함께 술을 마시며 어울리고 있었다. 이때 남자1이 여자1에게 섹스를 요구했고 여자1이 거부하자, 남자1이 폭력을 행사했다. 뺨을 때리고 옷을 강제로 벗기는 과정에서 자리에 같이 있던 남자2와 여자2가 여자1을 때리면서 하라고 강요를 했다. 이때는 남자1과 2, 그리고 여자2가 모두 성폭력법상 특수강간죄가 적용되어 처벌을 받았다. 성폭력을 직접 행사한 사람 뿐 아니라 옆에서 도와준 것도 강간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범인이 검거된 사건들이다. 성폭력과 관련된 법이 허점이 많고 유명무실하다고 지적도 하지만 검거된 사건도 많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것과 실제 적용이 다른 경우도 있다. 뚜렷한 근거가 없으면, 아니면 가해자가 미성년일 때, 또는 합의만 이루어지면 누구든지 풀려나는 걸로 아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폭력이란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도 많다. 가해자의 가족 중 그런 사람이 꽤 많다.
쌍방 합의로 안되는 사건도 있고, 미성년이라도 가해자임이 확인되면 재판이나 처벌은 법에 의해 받게 된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은 드러나지 않는 게 훨씬 많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증거가 없어 억울하게 도움도 못 받을까봐, 소문이 나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주위 사람 명예에 누가 될까봐, 자신 말고 가족들이 괜히 손가락질 당할까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성폭력 신고율은 전체 사건의 8% 미만이라는 보고도 있다. 아직도 90% 이상의 피해자들은 당하고도 그냥 참거나 울고만 있다는 뜻이다.
성폭력특별법을 눈물의 법이라고들 부른다. 성폭력법 강의를 들을 때, 강의실에서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느냐'며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우리 사회에서 피해당하고 우는 사람 중에는 약자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만은 없잖은가. 그런다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게 뻔하므로.
이영미는?
만화 '아색기가' 스토리 작가이자 '란제리스타일북' 저자, 성교육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