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안산 신한은행엔 두 가지 수식어 붙는다. 앞에는 ‘레알’, 뒤에는 ‘왕조’라는 단어다. 스페인 프로축구 명문 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갈 만한 초호화 군단이면서 수백년간 영속한 왕조처럼 패권을 놓지 않는다는 뜻에서였다.
올 시즌엔 신한 왕조의 아성에 금이 갈 것처럼 보였다. 부천 신세계가 지난 시즌 득점 1위 김계령과 두 번째 최장신 강지숙을 영입해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만년 2위 용인 삼성생명도 개인기와 조직력을 끌어올리며 설욕을 잔뜩 벼렷다. 반면, 신한은행은 하은주·최윤아 등 주전의 부상이 이어져 임달식 감독의 속을 끓였다. 개막 전 전문가들은 “예년처럼 신한은행이 독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올해도?’가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한은행은 시즌 초반 약간 주춤했을 뿐 5일 현재 12연승을 달리며 16승2패를 기록,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승률은 8할8푼9리로 9할대에 근접한다. NBA 역대 최고 승률이었던 시카고 불스의 72승10패(8할7푼8리)를 웃도는 수치다. 엎치락뒤치락했던 2위 삼성생명과 격차는 2경기로 벌어졌다.
다른 팀들의 전력이 한층 좋아졌음에도 신한은행이 독주하는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신한은행이 더 강해졌고, 점점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하은주의 높이와 정선민의 공격, 전주원의 운영이 전력의 세 축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엔 김단비와 이연화 등 식스맨들이 주전급 선수로 성장해 빈틈이 없어졌다. 지난 시즌 평균 6.9점을 넣은 김단비는 태극마크를 단 자신감을 살려 경기당 17.2점을 터뜨리며 득점 1위에 올라 있고, 이연화도 득점 4위(15.2점)로 공격력이 매섭다.
지난 시즌까지 KDB생명 사령탑을 지낸 이상윤 해설위원은 “예전엔 정선민·하은주만 막으면 됐는데 이젠 김단비·이연화·김연주 등 누가 나와도 밀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딱히 적수가 없다”고 했다. 하은주와 정선민이 건재한데다 부상으로 고생한 최윤아의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어 다른 팀으로선 신한은행을 넘기가 더욱 버겁다.
신한은행이 ‘레알’, ‘왕조’의 수식어를 단 건 2008~2009시즌 37승3패로 리그를 초토화한 게 결정적 계기였다. 유영주 SBS ESPN 해설위원은 “지금 신한은행은 그때보다 더 강하다. 이대로 가면 5년 이상 장기 집권할 것 같다”고 했다. 임달식 감독은 부상을 우승의 유일한 걸림돌로 꼽고 있다.
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