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생, 우리 나이로 79세인 틴토 브라스는 도색 영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우리에게는 '모넬라'나 '카프리의 깊은 밤' 등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노장 감독은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 이탈리코 브라스의 손자로 태어나 네오리얼리즘의 거장인 로베르토 로셀리니, '길'로 유명한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감독들과 작업을 하기도 한 정통 이탈리아 영화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탈리아의 비주류 도색 영화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진실이 없는 이탈리아의 정치적 현실 속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진실은 섹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포르노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나치 독일은 B급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설정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엉망으로 만들어도 좋은 체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이나 정치적 올바름 같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 최근 타란티노 감독이 '바스터즈'를 통해 한마디로 '박살'을 낸 바 있다.
틴토 브라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이 나치 독일의 설정을 이용한 작품이다. 1976년작 '살롱 키티'는 나치 정부에서 비밀리에 세운 매음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온갖 흉칙한 섹스 훈련을 받은 매춘부들이 반 나치주의자를 색출하기 위한 비밀 공작을 펼친다. 나치에 선발된 수십명의 여성들과 병사들이 모두 옷을 벗고 도열해 한명씩 손을 잡고 훈련을 시작하는 장면은 마치 나치 시대 선전 다큐멘터리스트 레니 리펜슈탈의 '올림피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영화는 루이 브뉘엘이나 장 콕토가 도색영화를 만든 것 같은 예술적 분위기를 풍긴다. 원색과 블랙을 절묘하게 이용한 색채 감각이나 클로즈업과 롱숏을 적절하게 오가는 편집 감각은 미술과 편집까지도 지배한 틴토 브라스의 실력이 증명되는 부분이다. '살롱 키티'는 틴토 브라스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자극적이며 변태적인 소재를 기묘한 미술적 감각으로 펼쳐내는 이탈리아 감독의 솜씨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미국의 도색 잡지 '펜트하우스'였다. '플레이보이'와 함께 성인 잡지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히는 펜트하우스는 영화 산업에 진출을 결심하고 틴토 브라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바로 도색 영화 사상 최강의 라인업을 자랑하는 전설 '칼리귤라'다. 영국의 국민 배우 헬렌 미렌이 출연한 것으로 소개한 바 있는 이 작품은 2시간 36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대작' 포르노다. '시계태엽 오렌지'로 유명한 말콤 맥도웰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당대의 명배우 피터 오툴, 당시 틴토 브라스 감독의 페르소나였던 테레사 앤 사보이 등이 출연했다.
근친상간, 잔혹하고 변태적인 섹스로 인류 역사상 가장 퇴폐적인 시대인 로마 시대를 그려냈다. 하지만 틴토 브라스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절망하게 된다. 4시간으로 완성한 영화를 제작사가 개봉하기 편하게 반 정도로 잘라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