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영화와 섹스 코미디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영화들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미국의 '포키스'나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들은 그 전형적인 영화들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 '원조'격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는 1978년작 '그로잉 업'이다.
아직 여자들과 제대로 이야기도 못 해본 벤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미남 바비, 그리고 뚱보 휴이가 각종 성적인 모험과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 '그로잉 업'의 주요 내용이다. 그중엔 남편이 해외로 떠나 외로워하는 유부녀와 관계를 벌이는 것도 있고 성매매 업소에서 윤락녀와 관계를 가지고 성병에 걸리는 상황도 있다. 상당히 '막장' 성인영화적인 장면들이 반복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폴 앵카의 '다이애나(Diana)'나 '파피 러브(Poppy Love)' 등 1950년대 히트송들이 영화 전편에 흐르고 특히 후반부에 흘러나오는 바비 빈튼의 명곡 '미스터 론리(Mr. Lonely)'는 더욱 영화를 기억에 남게 만들기도 했다.
'그로잉 업'의 또 다른 주목할만한 부분은 여주인공 니키가 바람둥이인 바비와 관계를 가지고 임신을 하는 상황이다. 순둥이 주인공 벤지는 니키의 낙태 수술을 돕고 뒷바라지를 한다. 영화 '색즉시공'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최성국의 코미디 장면에 사용된 '유아 마이 데스티니(You Are My Destiny)'는 '그로잉'의 사운드트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곡이다. '색즉시공'의 감독인 윤제균은 청춘 시절에 개봉된 '그로잉 업'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1950년대의 미국 히트송이 흘러나오는데다 미국 영화로 포장돼 개봉됐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 같지만 사실 '그로잉 업'은 이스라엘 영화다.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처럼 느껴지는 이스라엘에서 이미 1970년대에 이렇게 개방적인 영화가 나온 것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각종 국제 영화제가 아니면 이스라엘 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은 현재 상당히 낯선 나라의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 작품은 1978년 개봉 당시 자국 이스라엘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화제 때문에 미국과 일본에서 연이어 개봉하며 전 세계적인 히트작이 됐다. 개봉 당시 이스라엘 국민의 40%가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로잉 업'은 미국과 일본의 히트에 힘입어 1983년 우리나라에 개봉됐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으로 청소년들의 접근을 일체 막았으며 광고의 어느 부분에도 주인공이 고등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명기하지 않았지만 5월 5일 어린이날 개봉했다는 사실 역시 재미있다.
'그로잉 업'은 이후 2001년까지 무려 9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지면서 전설적인 청춘 섹스 코미디로 각광받았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한 보아즈 데이비슨은 현재 할리우드의 큰 손이 돼 있다. 1990년대 할리우드로 이주한 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익스펜더블'이나 최근 개봉된 '메카닉'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