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은호는 안 왔나요?"
이지훈 대전 홍보팀은 16일 인천 월드컵 경기장에서 이 질문만 수십 번 받았다. 그는 "시민구단 대전 홍보팀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거부해봤다"고 귀띔했다. 왕선재 대전 감독이 내린 '박은호 보호령' 때문이다. 왕 감독은 "어린 선수가 주목을 받으면 들뜨게 된다.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왕 감독은 컵 대회 개막전 인천 원정에도 박은호를 데려오지 않았다. 인천 지역 기자들과 구단 관계자들은 "박은호를 실제로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2. 박은호(24)의 인기는 대전에서 더 뜨겁다. 박은호와 함께 다니는 김태우(26) 통역은 "백화점에 갔는데 은호를 알아본 팬들이 모여 쇼핑을 하기 힘들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이 친구가 스타의식이 있어서 사인 공세를 즐긴다. 밥도 후다닥 해치우더니 또 나가자고 하더라. 따라다니는 입장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14일 대전 선수단이 머무는 공주 계룡직업훈련소에서 박은호를 만났다. 박은호는 기자가 직접 찾아온 것을 신기한 듯 보더니 이내 장난을 친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동그랗게 모으더니 인터뷰하려면 돈을 달란다. 기자가 당황하자 "농담이다"며 웃는다. 첫 질문을 하자 이내 진지한 태도로 답한다. 프로였다.
-고향이 어디냐. 도대체 향수병이 없는 것 같다."내 고향은 푸른 대서양이 보이는 필라 알라고에스란 곳이다. 브라질 여자축구 국가대표 마르타를 아는가. 그 선수가 태어난 곳과 같은 주에 있다. 그립긴 한데 한국에 있어도 가족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지을 정도로 한국이 좋은 이유가 무엇이냐. "오기 전부터 친구인 산토스(제주)와 파비우(전 대전)에게 한국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음식도 맛있고, 시설도 깨끗하다. 무엇보다 안전해서 좋다."
-안전? 브라질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냐."브라질 팬들은 경기장에서 정말 무섭다. 한국 관중은 매너도 좋고 열광적이라 매력적이다."
박은호의 장기는 프리킥이다. 그의 오른발은 6일 울산과 K-리그 개막전부터 빛났다. 그는 개막전 사상 처음으로 프리킥으로만 2골을 뽑았다. 현재 K-리그에서 프리킥으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에닝요(전북·12골)다. 백운기 전력분석 팀장은 "박은호는 양발 잡이다. 어디서든 프리킥으로 골을 넣을 수 있다"며 "K-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칭찬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프리킥을 잘 찼나. "볼 터치나 슈팅은 어렸을 때부터 소질이 있었다.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한다. 대전에서 아쉬운 것도 그런 것이다. 훈련장과 숙소의 거리가 멀어 버스를 타고다닌다. 남아서 프리킥을 못 찬다. 브라질에서는 훈련이 끝나고 친한 친구 3명과 함께 프리킥 연습을 했다. 매일 40개 넘게 찬 것 같다."
- 매일 40개면 1년이면 1만 4600개다. 놀랍다. 이제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무슨 소리냐. 경기에서 프리킥은 한두 번 나온다. 매일 훈련해서 익숙해야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 멋진 말이다. 프리킥은 K-리그 최고라는 평가가 있는데."나는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닝요와 모따(포항)·몰리나(서울)도 잘 찬다. 모두 프리킥의 특징이 다르다."
- 그럼 '박은호표' 프리킥은 무엇인가."호나우지뉴가 내 롤 모델이다. 그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내 프리킥은 뚝 떨어지는 궤적을 그린다. 인터뷰로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겠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대전 훈련에 합류했다. 한밭 종합운동장까지 박은호를 찾아 온 어린 팬도 있었다. 그는 웃으며 사인을 해줬다. 지역 방송국과 인터뷰에도 진지하게 응했다. 1군 선수들이 경기를 보며 쉬고 있을 때도 박은호는 끊임없이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한국에서 이루고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딱 하나다. 나를 뽑아 준 대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인천=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