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마사회 제주 육성목장에서 열린 국산마 경매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예비 경주마를 살펴보고 있다. KRA한국마사회 제공 22일 한국마사회 제주 육성목장에서 열린 국산마 경매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예비 경주마를 살펴보고 있다. KRA한국마사회 제공
“경매번호 51번 경주마는 1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경매사의 낙찰 확인 발표가 끝나자 제주목장의 경매장이 순간 술렁거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억대 몸값의 예비경주마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열린 경매에서 1억1600만원의 주인공이 탄생한지 1년만의 일이다. 이번에 역대 4위의 몸값으로 낙찰된 예비 경주마는 부마 ‘메니피’와 모마 ‘스트레이트캐시' 사이에서 태어난 2세짜리 암말. 뛰어난 혈통과 다부진 체격 등으로 경주마 경매 전부터 구매자들 사이에서 최고가의 주인공으로 지목됐다.
지난 22일 KRA 제주목장에서 열린 경주마 경매에는 총 111마리의 예비 경주마가 상장돼 그중 61마리가 낙찰됐다. 최고가는 1억원, 평균 낙찰가는 4136만원을 기록했다. 특히 낙찰률이 55%로, 최근 3년 평균 낙찰률인 38%에 비해 대폭 상승한 것이 눈에 띈다. 평균 낙찰가 역시 25%나 올랐다. 이는 KRA한국마사회에서 수십억원을 들여 도입한 우수 씨수말의 자마가 대거 경매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경매가 예년보다 활황을 보인 것은 지난해 선풍적인 돌풍을 일으킨 씨수말 메니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06년 KRA가 미국에서 약 40억원에 들여온 메니피는 도입 당시부터 한국 경마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줄 주인공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일본 경마가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선데이 사일런스’란 미국산 씨수말이 있었듯, 메니피도 한국 경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예상됐다.
메니피 자마들은 지난해 데뷔하자마자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한국 경마 역사상 최초로 같은 씨수말의 자마 3마리가 대상경주에서 1, 2, 3위를 모두 석권하는 사건이 발생해 메니피의 가치는 급상승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브리더스컵 대상경주에서 메니피의 자마인 ‘선히어로’, ‘선블레이즈’, ‘우승터치’가 모두 1, 2, 3위를 기록하며, 아버지의 명성을 드높인 것. 선히어로와 선블레이즈는 각각 8500만원에 경매시장에서 낙찰됐는데, 벌써 각각 2억7000만원과 1억2000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이런 추세로 앞으로 3∼4년간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면 10억원이 넘는 상금벌이도 가능하다는 것이 경마계의 중론이다.
메니피 자마들의 활약은 여타 우수 씨수말에 대한 기대도 함께 올려놨다. 메니피처럼 2007년에 약 40억원의 가격에 도입된 씨수말 ‘포리스트캠프’의 자마는 이번 경매에서 13마리가 상장돼 8마리가 낙찰되며 씨수말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다. 최고가는 9500만원이며, 평균낙찰가는 5188만원이었다. 포리스트캠프와 더불어 이번에 첫 자마를 상장시킨 ‘피코센트럴’ 역시 8마리 중 7마리가 낙찰되는 활약세를 보였다.
경주마의 부가가치는 천문학적이다. 이미 완전경쟁 체제로 운영되는 해외 선진국에서 씨수말의 정액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 1캐럿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수한 혈통의 경주마는 경주능력이 검증되지 않아도 100만 달러 넘게 팔리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는 KRA 주도로 무료 교배 등을 통해 씨수말 산업이 육성됐지만, 이제는 민간 목장에서 자체적으로 씨수말을 해외에서 도입해 교배료만으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2010년 ‘리딩 사이어’에 등극한 민간 씨수말 ‘크릭캣’은 올해 1회당 약 500만원 안팎의 교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내에 도입돼 올해부터 교배를 시작한 민간 씨수말 ‘어드마이어둔’도 일회 교배료가 200만원에 달한다.
경주마를 키우는 생산 농가의 수익도 만만치 않다. 2008년 기준으로 한우 비육우의 평균 거래가격이 534만원이지만, 국산 경주마의 평균가격은 3330만원이었다. 비용 측면에서도 경주마는 상대적으로 분뇨처리, 사료수급에서도 여타 가축에 비해 효율적이다. 이 때문에 소와 돼지 생산농가는 점차 감소추세이나, 말은 2000년 520개 농가에서 2008년 1528개 농가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최근 말산업 육성법이 통과되면서 말 사육농가에 대한 지원도 대폭 확대된다. 말산업 특구 지정 등을 통해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고, 말의 수요도 늘어나 안정적인 유통·판매체계도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 및 중앙아시아의 경마 시장이 성장하면 해외수출까지 가능해, 이래저래 말 사육농가의 수는 더욱 늘어날 예정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