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유행하는 아르바이트 가운데 별난 게 있다. 인기 여자 아이돌 멤버가 식사를 하다 떨어뜨린 음식이 160만원 정도로 거래된다고 한다. 몇 년 전 한 여자 아이돌이 후라이드치킨을 먹다 참깨 몇 조각을 떨어뜨렸는데 그게 경매에 올라갔고 3엔에서 시작된 가격의 최고 낙찰가는 13만 엔으로 마감했다. 이런 일이라면 아이돌이 위험할 만큼 사생활을 캐내 밤낮없이 따라다니는 ‘사생팬’ 들이나 가능한 일이지만 가격이 높아 아이돌만큼이나 인기가 높은 일감이라고 한다.
카라의 멤버 강지영이 프로야구 시구행사 때 입었던 유니폼이 250만원을 호가하고, 다른 카라 멤버들이 입었던 무대의상도 몇 백만원을 넘어선다. 소녀시대 멤버들이 광고에 선보였던 의상은 경매에서 한 벌에 800만원선에서 낙찰되었다.
진정한 팬이라면 음반을 직접 사든지, 그가 나온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저장해 본다거나 라이브쇼를 찾고, 팬 사인회를 놓치지 않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그것이 팬으로서 해당 가수나 걸 그룹을 진정으로 도와주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런 건 조금 다르다. 몸이나 입에 직접 닿았던 의상이나 먹다 떨어뜨린 음식을 수백만원씩 주고 사는 그 행위의 의도는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눈 먼 시계공'이라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는 신체의 일부를 인공 유기체로 대체하는 서비스가 나와 많은 사람들이 사이보그가 되는 설정이 나온다. 이것이 성형수술과 질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니, 몇 십 년 후 스타들이 낡고 유행에 뒤쳐진 신체를 비싸지만 새로 나온 신체 기관으로 대체하는 끔찍한 미래도 상상해본다.
한 단편 성인만화에는 변태연구회 회장을 자처하는 남학생이, 학교 체육관에서 평균대 위 연기를 연습하던 여학생이 실수로 넘어져 평균대에 다리 사이를 얻어맞는 장면이 나온다.
남학생은 바로 달려가 여학생이 넘어진 그 ‘부위’를 톱으로 썰어가려고 한다. 그의 변태 수준은 놀라운 속도로 늘어 예쁜 여학생이 빌려갔던 책, 그 책을 다시 빌려다가 그녀의 손길이 페이지 여기저기에 닿았을 것을 상상하며 자위하는 경지에 이른다.
페티시의 종류는 많다. 여인의 손이나 몸에 직접 닿았던 걸로도 성적 흥분이나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스타킹·구두·안경이나 립스틱·선글라스 같이 굳이 몸에 걸쳤던 물건이 아닌 것에서부터 다리나 등·손 같은 신체 특정 부위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다.
가터벨트는 스타킹을 고정시키는 물건이지만, 고정 안시키면 흘러내리는 스타킹을 위해 착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잘 벗겨지지 않도록 잠그는 것이 더 벗기고 싶은 충동을 주는 걸로 바뀌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발을 감싸다 못해 휘어질 때까지 묶어두는 중국의 전족 풍습이나, 우리네 옛날 한복 치맛자락 사이로 나오는 버선코, 팔을 위로 들면 짧은 저고리 탓에 드러나는 여인네의 겨드랑이도 페티시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세일러복이나 간호사복 같은 코스튬 복장도 빠지지 않는다. 페티시가 뭐든 물질로 대체되는 요즘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섹스가 단순한 번식이나 행위에 그친다면 그런 상상이 허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섹스는 그 자체보다 환상이고 욕망이며 문화고 정신이다.
이영미는
만화 '아색기가' 스토리 작가이자 '란제리스타일북' 저자, 성교육 강사, 성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