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은어가 '짝배기'다. 왼손 선수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른손이 주류이고 왼손은 별종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전형적인 오른손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야구계는 왼손이 주류였다. 각 팀 에이스들은 왼손이었고 타격 상위권에도 왼손 타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 모처럼 오른손들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오른손 투수들이 4년 만에 왼손 투수의 평균자책점을 앞지르기 시작(21일자 보도)한 데 이어 오른손 타자들의 타율 역시 4년 만에 왼손 타자들을 추월했다. 시즌 초반 타격 순위표 상단은 오른손 타자 일색이다.
오른손, 다시 주류가 되다타율과 타점 홈런 5걸 중 왼손 타자는 타율 1위 이용규(0.388·KIA)가 유일하다. 그나마도 종아리 부상으로 몇 경기째 나오지 못하고 있어 1~2경기 후에는 규정 타석 미달로 순위표에서 빠지게 된다. 순위표를 10위까지 확장해도 타율에서는 최희섭(KIA)만 포함될 뿐 나머지 8명은 모두 오른손이다. 타점 10걸에는 박용택(8위) 만 왼손이다.
지난해까지 '빅5'에 단골손님이던 김현수와 박용택, 최희섭이 부진한 것이 아니다. 모두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정상 행보를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오른손 타자들이 약진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대호(롯데) 김동주(두산) 정근우(SK)는 꾸준했다고 하더라도 이범호(KIA) 김선빈(KIA) 최준석(두산) 손시헌(두산) 등의 부상은 의외다.
왜 다시 오른손타자?최근 5~6년간 왼손 타자들의 세상이었다. 김성근(SK) 김경문(두산)으로 대표되는 기동력 및 짜임새의 야구가 득세를 하면서 맞춤형 왼손 타자들이 줄지어 나왔다. 이종욱·오재원·정수빈(이상 두산), 박재상·조동화(이상 SK), 이대형·이병규(이상 LG), 이용규·김원섭(이상 KIA) 손아섭(롯데) 등 발빠른 왼손 테이블세터가 거의 공식처럼 됐다.
김현수와 박정권(SK), 박용택, 최희섭은 중심타자로 우뚝 섰다. 두산은 1~3번과 외야라인이 모두 왼손이다. LG도 외야 빅5 중 이택근만 오른손이었다. 가르시아(롯데) 클락(넥센) 페타지니(LG) 등 한동안 외국인 타자도 모두 왼손이었다. 상대적으로 희소성을 가져 강점을 갖던 왼손 타자들이 봇물터지듯 나오면서 주객이 전도된 모양처럼 됐다.
하지만 왼손이 주류가 되는 순간 메리트가 사라졌다. 오른손의 가치가 더 귀해지면서 다시 오른손 타자들이 전면으로 나오는 역사적인 순환을 맞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른손 타자가 왼손 투수를 잡는다?오른손의 재집권은 투수와 타자 쪽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 더욱 인상적이다. 류현진(한화) 김광현(SK) 양현종(KIA) 등 왼손 에이스들이 동반 부진을 보이는 등 올시즌 초반 왼손 투수의 몰락은 두드러졌다. 오른손 타자들의 성적이 갑자기 좋아진 것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오른손 타자들은 오른손 투수보다 왼손 투수들에게 약했다(표참조). 상식을 깨는 결과였다. 왼손 타자가 같은 왼손 투수에 약점을 보이듯 오른손 타자는 오른손 투수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반대 손의 투수보다 같은 투수의 손에서 나오는 공을 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오른손 타자들이 드디어 제자리를 잡았다. 오른손 투수보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더 높은 타율을 보이기 시작했다. 왼손 투수들은 다시 왼손 타자 맞춤형 투수로 본업에 충실하게 됐다. 오른손 타자와 투수의 동반 상승 현상은 이러한 시너지 효과로 당분간 더 강화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김동환 기자 [hwan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