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10:00하승진은 축하연 자리에서도 분위기 메이커였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KCC 관계자·팀 동료·팬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어지는 사인 공세에도 귀찮은 기색 없이 정성껏 팬들을 대했다. 여성 팬들이 "오빠, 멋있어요"라고 하면 "나도 알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승진은 "100명 넘는 팬들에게 사인을 했다. 사진도 50번 넘게 찍은 것 같다. 오늘은 사인을 1000번 넘게 해도 행복할 것 같다"며 웃었다.
술도 많이 마셨다. 너도나도 다가와 "MVP 받은 것 축하한다"며 소주를 권했다. 시즌 중에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편이지만 이날 만큼은 마시고 싶었단다. 어영부영 술잔을 받다 보니 어느덧 소주 4병을 마셨다. 덩치가 커서일까. 그는 한 치의 흔들리는 모습이 없었다. 주량도 실력만큼이나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PM 10:30하승진의 누나이자 여자농구 챔프전 MVP 하은주(신한은행)도 축하연 자리에 참석했다. 둘은 서로 끔찍이 아낀다. 하승진은 "누나가 매 경기마다 응원 문자를 보내준다. 사소한 것이지만 많은 힘이 된다"며 "누나가 먼저 MVP를 받아 부담이 된 게 사실이다. 이제 나도 받았으니 'MVP 남매'다"며 웃었다. 하은주는 축하연 자리에서 동생의 몸부터 챙겼다. 경기 막판 다리에 쥐가 나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걱정이 앞서서다. 하은주는 "다리에 쥐가 나면서까지 열심히 해줘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남녀 프로농구 역사상 남매가 동시에 챔프전 MVP를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7일
PM 1:00하승진은 전날 술을 먹어서인지 조금 늦게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경기도 용인시 마북동 숙소를 청소하는 일. 정규리그 후반으로 갈수록 바빠져 청소할 시간이 없었단다. 작은 방을 청소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대형 쓰레기봉투 3개를 꽉 채우고나서야 깔끔해졌다. 하승진은 "청소 끝!"이라고 외치며 신나게 짐을 쌌다. 부모님이 기다리는 수원으로 가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한 달간은 집과 숙소를 오가며 생활을 할 예정이다. 휴가를 받았지만 굳이 숙소에 오는 이유는 1년 전부터 기르는 열대어에 밥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숙소를 떠나며 열대어에게 "잠깐 다녀올게"라는 인사를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원으로 향했다.
Tip…하승진의 진짜 취미
하승진의 취미는 낚시다. 휴가를 받으면 유병재·하재필 등 팀 동료와 조용한 곳으로 낚시를 간다.
하지만 그의 숙소에 가면 더욱 다양한 취미를 알 수 있다. 대부분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취미다. 챔프전 우승 다음날 그의 숙소를 방문하자 대뜸 카메라를 내놓았다.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DSLR 카메라다. 렌즈도 3개나 있다. 하승진은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구매했다. 그런데 구입한 사이트에서 메일이 왔다. 혹시 농구선수 하승진이냐고 묻더라. 맞다고 하자 반갑다고 했다. 할인은 해주지 않았다"며 웃었다.
또 다른 취미는 전자제품 구입이다. 새 제품이 아니다. 대부분 중고다. 그는 '중고나라'라는 인터넷 카페에서 중고 전자제품을 구입한다. 몇 년 전에는 중학생과 컴퓨터 기기를 직거래했다. 하승진을 본 중학생이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물건만 주고받은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한참 후에야 "하승진 선수 맞죠? 깜짝 놀랐어요. 열심히 하세요"라고 문자가 왔다. 그의 노트북도, 핸드폰도 모두 중고 제품이다. 하승진은 "새 제품보다 많게는 수 십만 원 싸게 사면 기분이 좋다. 방에 있는 대부분 전자제품이 중고다"고 말했다.
열대어를 기르는 취미도 있다. "좀 안 어울리죠?"라며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1년 전 임신을 한 '구피(열대어 이름)' 한 마리를 구입한 게 계기가 됐다. 지금은 큰 어항에 20~30마리의 열대어를 기른다. 하승진은 "잡생각이 많아지면 멍하게 열대어를 바라본다. 그러면 정신도 맑아지고 불필요한 생각이 사라진다"고 했다. 김환 기자
김환 기자 [hwan2@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