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가 끝난지 일주일, 김영애(60)는 한결 편안해보였다. 데뷔 40여년이 다 된 명배우라고 해도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여자 공순호 회장을 연기하는 게 쉽진 않았을 터, 밤샘촬영과 넘치는 분량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은 컸다. 염정아와의 불꽃튀는 맞대결이 화제를 모았고 '공회장을 연기할 사람은 김영애 밖에 없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공회장 캐릭터를 훌훌 벗어던진 김영애가 밝은 웃음과 함께 일상을 되찾았다.
-실제 목소리가 극중 공회장과는 많이 다르다."원래 하이톤에 애교도 좀 섞여있다. 공회장은 항상 카리스마가 넘치기 때문에 이 목소리로는 연기할 수 없어 조절이 필요했다. 톤을 낮추고 무게를 실었다."
-공회장 캐릭터가 큰 인기를 누렸다."회사에서 얘기해줘서 '잘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마침 조카도 '이모, 완전 빵 터졌어'라며 관심을 보였다.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어 실감을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줬다니 너무 감사하다."
-끝나고 난 뒤 후유증은 없었나."원래 작품 끝나면 금방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편이다. 이번엔 특히 너무 힘이 들어서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촬영날도 섭섭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속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촬영 끝내고 집에 들어오니 그 때부터 기분이 너무 이상해지더라. 그 다음날 친구와 만나 술을 한잔 하고 그냥 뻗어버렸다. 이틀 정도는 기분이 정말 허한 게 이상했다."
-많이 힘들었나 보다."대사도 많고 분량도 많았다. 쉬지 못하고 밤샘 촬영이 이어져 대사 외울 시간도 없었다. 특히 공회장은 극중 누구 앞에서도 지지 않는 사람이라 항상 카리스마를 내뿜어야 해 심리적 압박도 대단했다. 공회장이 극중 쓰러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언제 쓰러지게 될지는 몰랐다. 매회 대본을 보면서 이번엔 쓰러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회에야 쓰러졌다.(웃음)"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했나."잘 먹지도 않던 과자나 떡볶이 등 현장에 있던 먹거리로 풀었다. 장이 안 좋아서 그런 것들을 먹으면 안 되는데 스트레스가 심해지니 자꾸만 먹어서 풀게 되더라."
-센 캐릭터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글쎄, 난 순한 것도 잘 할 수 있는데 왜 자꾸만 센 역할만 시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특징없는 엄마 역할만 하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 공회장을 맡게 된 것도 '대기업 총수에 오른 여성'이란 점이 매력적이었다. 드문 역할이고 희로애락을 고루 표현할 수 있는만큼 배우에겐 굉장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쉽게 갖지 못하는 기회를 내가 가졌다는 것에 대해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웃음이 많아 NG를 많이 냈다고 들었다."한번 터지면 주체할 수가 없다.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를 할 때도 애를 먹었었다. 사실 난 신인때부터 그랬다. 당시에는 선배들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다."
-'나는 가수다'처럼 '나는 배우다'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연기자를 몇 개의 잣대로 평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가수다'가 실력파 가수들을 모은 것처럼 명연기자들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겠나. 각자 할 수 있는 역할, 어울리는 역할이 너무 달라 특정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많이 알려진 건 '저거 치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선 내가 법이다. 나를 어기면 불법이다'라는 대사가 맘에 들었다. 조선시대 왕들도 해보지 못했던 대사일거다."
-'세시봉 콘서트'등 중년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많아지고 있다."사실 국내 대중문화가 한 쪽으로 너무 치우쳐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이 다양성을 확보해가고 있는 시기인 것 같다."
-배우가 갖춰야 할 요건은 뭐라고 생각하나."타고난 조건과 노력이 동시에 받쳐줘야 한다. 내 경우엔 반반이다. 일단 뭘 시작하면 죽기살기로 하는 경향이 있다. 뭘 해도 만족이 안 되니 미친듯이 매달리게 되는 거다."
-염정아와의 호흡은 어땠나."정말 오랜만에 드라마에서 만났다. 예전에는 정아가 어렸지만 이젠 아이도 둘씩이나 낳고 말도 더 잘 통하게 됐다. 촬영기간에는 밥 한번 같이 먹을 여유도 없어 아쉬웠다. 좀 여유있게 촬영했으면 정말 재미있게 지냈을거다."
-김영애에게 있어 '로열패밀리'는 어떤 작품인가."40년동안 수없이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다. 심지어 어떤 작품을 보다가 '어, 저기 내가 나오네. 언제 찍었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 많은 작품 중 내가 기억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이 10편 정도 있다. '야상곡' '형제의 강' '황진이'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로열패밀리'도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공순호 회장 연기에 도움이 됐나."당연하다. 당시 사업을 할 때도 정말 미친듯이 매달렸다. 재무 쪽만 빼고 사업 전반에 내가 직접 관여를 했다. 내가 당시 7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공순호 회장은 7만여명 이상을 거느린다. 열정적으로 사업에 매달렸던 그 때를 떠올리며 공회장을 연기했다."
-또 다시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사업을 하면서 그 경쟁체제가 정말 냉혹하다는 걸 알게 됐다. 두번 다시 무한경쟁 속으로 내 스스로를 내몰고 싶진 않다."
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