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J가 통학버스를 대신 P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일어났다. 평소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과감한 화법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게 만드는 J는 그날도 어록을 남긴 것이다. ‘지금 네 모습이 너무 섹시해서 너의 그것을 당장 입에 넣고 싶어.’ J가 하기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교내에 J가 한 말이 퍼져버렸고, 소문 속에서 J는 섹스를 엄청 밝히는 감당 안 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섹스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까 소문이 잘못 난 것도 아니네.” J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반응했다. “P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앞만 보고 운전만 하던 걸. 내가 당장 자기 바지라도 벗기면 어쩌나 완전 쪼그라든 모습을 하고 말이야. 그래서 농담이라고 했어. 그러고선 아무 일도 없었어.”
“넌 사람들이 네 얘기를 함부로 하고 다니는 거 신경 안 쓰여?”
“그런 걸 신경 쓰고 살았다면 내가 P에게 그런 얘길 했겠니? P가 안정감 있게 운전을 잘하기에 그런 걸 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 애가 동의하면 난 나의 판타지를 실현시킬 수 있어 좋은 거고,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는 일이었어. 다만 이번 일로 P란 애의 인품을 잘 알게 된 거지. 나랑 제대로 하지도 못했던 주제에 그렇게 떠들어 대고 다녔다는 거잖아. 그 아이에게 있던 호감은 완벽하게 사그라졌어.”
J는 상처입지 않은 것처럼, 그런 말들이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것처럼 단단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일부러 강하게 말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방어막을 세우는 것이라는 게 빤히 보였다.
아이들이 모여 떠들어대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다. J가 구설수에 오를 만한 행동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을 만들어내기 바빠 보였다. 타인의 섹스를 간편히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소문 속에서 J는 피라냐가 가득한 강에 내던져진 마냥 물어뜯기고 있었다. J를 가볍고 행실이 좋지 못한 아이로 만들어 놓고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게 된 경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누가 더 이 이야기를 자극적이게 전달할 수 있을까 경쟁이 붙은 것 마냥 확대 재생산하기 바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소문 속에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J가 말하지 않았다면 소문의 출처는 P였다. P는 거들먹거리며 자신이 그런 유혹을 받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인 냥 남자애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는 떠벌렸을 것이다. J의 표현방식이 불쾌하였다면 그 자리에서 J에게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고 거절의사를 밝혔으면 되는 문제였다. 그때는 당황해서 어수룩한 태도를 취했으면서 둘만의 일을, 자신에 대한 J의 호감을 가볍게 술자리 안주거리로 만들어버렸다.
왜 아이들은 J만 나쁜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섹스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잘못인가?
J는 소문을 개의치 않았고 자신의 욕망에 당당했기에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J에 대한 소문은 얼마 못가 한 커플의 이별스캔들로 대체되었다. 젊음과 청춘이 푸르른 지성의 캠퍼스가 아니라 멍든 연애와 소문이 무성한 욕망의 캠퍼스. 남의 연애를 들여다보기 보고 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단 자신의 섹스 가치관을 잘 정립해서 좋은 사람과 한 번이라도 더 뿅 가는 오르가즘을 느끼는 게 더 현명한 건 아닐까?
▶현정씨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소녀적인 판타지가 넘치지만 생각 보다는 바람직한 섹스를 즐기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desirable-h.tistory.com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