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깨지면서 배운다고 하지만 이런 수모까지야….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같은 사건이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나는 1963년 봄 박경리 소설 원작의 영화 '김약국의 딸들'에 출연했다. 조연이었지만 '아낌없이 주련다'로 나를 키워준 극동흥업이 제작하고, 유현목 감독과 변인집 촬영기사가 카메라를 잡은 영화였기에 기꺼이 합류했다. 엄앵란·최지희 등이 주연이었고, 미국 유학파 출신의 김석강이 나와 나이도 비슷해 친구처럼 붙어다녔다.
촬영 둘째 날이었다. 통영에는 여관이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여관 골방에 배를 깔고 이야기에 열중했다. 당시 미국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국 생활이 그렇게 궁금할 수 없었다. 영어가 유창한 김석강이 주로 이야기하는 쪽이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김석강은 영특하고 순발력은 있는데, 말이 많고 가벼운 스타일이었다. 다른 스태프와 배우들은 저녁이 되면 술 마시고, 외출도 나갔다. 나는 집안 내력상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더구나 우린 신인이어서 돌아다니는 것도 부담스럽던 터였다. 아무리 들어도 미국 이야기는 신기하기만 했다.
당시에는 여관의 심부름꾼을 '조바'라고 불렀다. 그 여관은 일본식이어서 현관문을 열면 미닫이문이 나오고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늘어서 있는 구조였다. 감독이 가장 큰 방을 쓰고, 배우들이 나머지 방을, 신인배우인 나와 김석강은 끄트머리 골방을 썼다. 그 때 조바 아이가 유 감독과 변 기사가 우리를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촬영기사'라고 했지, '촬영감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선배가 부르는데 안 갈 수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김석강은 술을 못마셨다. 유 감독과 변 기사는 개다리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대작을 하고 있었다. 변 기사가 미닫이문 쪽으로 등 돌려 앉았고, 유 감독은 미닫이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굴 오른쪽으로 미닫이문을 보고 앉았고, 김석강은 나와 마주보았다. 우린 무릎 꿇고 공손히 앉았다. 유 감독은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기는 보이지 않고 코만 빨개지는 두주불사형으로 유명했다.
"너흰 왜 통영 구경 안가냐?"
유 감독의 질문에 말하기 좋아하는 김석강이 답했다.
"시나리오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유 감독으로선 우리 두 사람이 얼마나 기특해보였을까. 나 역시 열심히 하는 후배들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유 감독은 흐뭇한 표정으로 한 잔씩 하라며 술을 따랐다. 조심조심 한 잔을 받아마시는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미닫이문이 ‘쾅’ 소리와 함께 방 안쪽으로 넘어졌다. 미닫이문 앞에 앉아있던 변 기사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선배 배우 박노식이 비틀거리며 양손으로 미닫이문 틀을 잡은 채 서 있었다. 미닫이문은 그가 발로 차는 바람에 넘어졌다. 워낙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미닫이문 틀은 공간이 별로 없었다. 잔뜩 취한 박노식은 나를 향해 고함을 쳤다.
"이 새끼, 노승이(박노식의 동생)보다 못 생긴 것이, 감독하고 촬영기사에게 술 사면 잘 찍어줄 줄 알아?" ·
그는 '아낌없이 주련다'로 인기를 얻은 내게 앙심을 품은 것 같았다. 졸지에 우리가 술을 산 셈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 상황에도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 때 내 오른쪽 얼굴에 엄청난 통증이 몰아닥쳤다. 박노식이 힘껏 내 얼굴에 발길질을 한 것이었다.
▶ 영화 '김약국의 딸들'(1963년)에서 김혜정(맨 오른쪽)과 마주한 배우 박노식(가운데). 통영 촬영 중 신성일의 얼굴을 발길질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