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골보다 재밌는 별명이 더 기억에 남는다. 한 번 불린 별명이 평생의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동국(32·전북)은 10대 때 붙여진 '라이언 킹'이라는 별명이 여전히 그의 이름 앞에 붙는다. 차범근(58) 전 수원 삼성 감독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얻어온 별명 '차붐'을 아직까지도 사용한다. K-리그에 숨어있는 재밌는 별명을 살펴봤다.
◇진짜 닮긴 닮았네올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한 수비수 김태은은 알려지지 않은 '박지성 닮은꼴'이다. 팀에서도 박지성이라고 불린다. 동료들은 "박지성처럼 축구만 잘하면 된다"며 놀린다. 5월 5일 어린이날 열린 구단 행사에서는 아예 박지성 행세를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어린아이가 김태은을 보고 "박지성이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였다. 어른들은 가까이서 보고 아닌 걸 알았지만 아이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김태은은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않기 위해 정성껏 사인까지 했다.
김태은의 외모는 닮은꼴 유명인을 찾아주는 스마트폰 프로그램 '푸딩 카메라'에서도 검증됐다. 박지성과 99% 일치하다고 나왔다. 김태은은 "나도 99%가 나올지는 몰랐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외모보다는 축구 실력을 닮아야 할 때"라며 웃었다.
또 광주 FC 수비수 유종현은 한 팬이 "주앙파울로는 브라질에서 왔는데, 저 얼굴 까만 선수(유종현)는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 뒤로 별명이 '가나'가 됐다. 가나에서 온 외국인 선수라는 의미다.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별명도 있다. 대구 FC 공격수 조형익은 '팔공산 테베스'다. 작은 키와 폭발적인 드리블이 비슷해 붙여졌다. 두 선수의 키는 173cm로 똑같다. 팔공산은 대구 인근에 있다.
또 전북 현대 측면 수비수 진경선은 2008년 대구에서 뛰던 시절 '금호강 게리 네빌'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금호강 역시 대구 주변을 흐르는 강이다. 이 밖에도 전남 공격수 지동원과 이종호는 각각 '광양만 베르바토프'와 '광양만 루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모두 플레이 스타일에서 나온 별명이다.
◇말 장난으로 탄생한 별명상주 상무 골키퍼들은 독특한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박상철의 별명은 '무조건'이다. 가수 박상철이 부른 노래를 그대로 별명으로 쓰고 있다. 또 권순태는 '순대사르'다. 네덜란드 출신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를 패러디했다. 팀 동료들이 장난을 치다가 우연히 붙여진 별명이다.
부산 아이파크 공격수 최진호는 치토스라 불린다. 대학 시절 "뾰족한 머리 스타일이 치토스 같다"라는 선배의 말 한마디에 별명이 생겼다. 또 50m를 5초대에 뛸 정도로 발이 빨라 치토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팀 동료 임상협은 '땅여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혀가 조금 짧아서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다르게 인터뷰 때에도 혀 짧은소리를 종종 낸다.
수원 삼성 수비수 신세계의 별명은 '백화점'이다. 한 백화점 이름과 똑같아 붙여졌다. 윤성효 감독도 작전 지시를 할 때 '백화점'이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팀의 모기업 삼성과 유통업체 신세계와 관계를 생각해보면 탁월한 입단 선택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게 바로 제 이름입니다"이름이 곧 별명인 선수도 있다. 상주 상무 미드필더 고차원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팀 동료들은 "고차원적인 축구를 한다"며 장난을 칠 정도다. 그만큼 실력도 좋다. 올 시즌 리그 10경기에 나와 3골을 넣고 있다. 그가 전남에서 두 시즌 동안 넣은 2골보다 많다.
광주 FC에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세 명이나 있다. 김성민이다. 입단 순서에 따라 '김성민 원,투,쓰리'로 불린다. 하지만 경기를 뛰다 보면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이홍주 광주 홍보팀 사원은 "세 명이 붙어있으면 숫자로 구분이 된다.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으면 누가 누군지 생각이 안난다"며 웃었다.
5월 열린 상주와 리그컵 경기에서는 김성민 '원'과 '쓰리'가 각각 1골씩 넣어 3-2로 이겼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김성민이 두 골을 넣었다고 보도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성민 '투'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다. 전남과학대학교 출신이라 팀에서는 '사이언스(Science·과학)'라고 불린다.
◇"과거와 다른 별명 세계"젊은 K-리거들의 별명은 톡톡 튄다. 자신의 장단점을 마음껏 드러내는 별명이 대부분이다. 리오넬 메시·웨인 루니 등 세계적인 축구스타 이름을 스스럼없이 붙인다. 허무맹랑한 말장난도 곧바로 별명이 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별명이 제한적이었다. 외모나 플레이 스타일에 의존했다. 비교적 차분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별명이 많았다. 미남 축구선수 안정환(35·다롄스더)의 별명은 '테리우스'다. 순정만화 캔디의 멋진 남자친구 이름이다.
고종수(33·수원 트레이너)는 '앙팡 테리블'이다. 무서운 아이라는 뜻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붙은 별명이다. 또 황보관(46)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넣은 중거리 슛으로 인해 20년째 '캐논 슈터'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조광래(57) 국가대표팀 감독은 장발의 헤어스타일과 냉정하고 정확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독일 병정' ‘컴퓨터 링커’라고 불렸다. 이 밖에도 서정원은 ‘날쌘돌이’, 고정운은 ‘적토마’, 김주성은 ‘삼손’ 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김환 기자 [hwan2@joongang.co.kr]